외부칼럼

[포럼] 한국 주도의 신지역협력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30 18:42

수정 2026.04.30 19:03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동남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주로 다루는 필자는 요즘 부쩍 유럽 상황을 주시한다. 미중 전략경쟁, 강대국 일방주의, 도처의 전쟁과 위기 상황 속에 다른 지역과 국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궁금해서다.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트럼프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회귀를 재촉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드온 라흐만이 쓴 칼럼이 게재됐다. 미국의 관세 부과, 영국군에 대한 비하, 불확실한 안보공약 등으로 영국 정부가 다시 유럽과 협력, 궁극적으로는 EU로 돌아가는 정책을 만지작거린다는 내용이다.

갈수록 EU와 미국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에서 유럽과 미국의 동상이몽은 표면화된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유럽에 미국은 전략적 확신을 주지 못한다. 미국·이란 전쟁에서 영국과 다수의 EU 국가가 미국과 협력을 거부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EU를 통한 지역적 연대의 힘은 중요해진다. EU는 개별 국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뒷배가 되고 있다. 영국의 EU 재접근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지역으로 돌아와 보자. 이 지역에도 지역협력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탈냉전, 유럽과 미주의 블록화라는 위기가 동아시아 국가 사이 경제협력을 위한 동아시아경제공동체라는 제안을 촉발했다. 아시아 경제위기 직후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위해 '아세안+3'도 만들어졌다. 물론 이런 시도의 한계도 있었다. 당장의 위기가 극복되면 참여하는 국가들의 의지가 약해지고, 기능적 협력은 관성적으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위기 상황은 지역 국가 사이 협력을 다시 한번 필요로 한다. 협력을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을 시간을 두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근본 원인을 곱씹는 것처럼 정석대로 대응하기에는 좀 급박하다.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은 과거 지역에 안정성을 부여했던 강대국의 모습과 다르다. 도처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규칙에 기반한 지역질서, 무역질서도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런 도전은 어느 한 국가의 힘으로 넘어서기 어렵다. 같은 뜻을 가진 지역 국가의 단합된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도전들에 맞서 지역 국가의 협력, 지역 중견국의 역할 등 지역협력을 재촉하는 목소리는 이미 커지고 있다. 다만 누가 깃발을 들 것인가, 누가 지역협력 강화의 리더십을 제공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모두 한발 물러선다.

김대중 정부 시기 한국은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이미 30여년 전인 김대중 정부 시기보다 한국의 경제력, 외교력, 과학기술의 힘, 소프트파워는 훨씬 커졌다. 위기에 맞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단결과 협력을 주창할 하드파워 기반은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정치적 의지가 더해지면 된다. 지금 시점에서 위기에 맞서 지역협력 강화를 주창하고, 이를 견인하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 외교전략과 비전은 이 방향을 향해야 한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