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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첨단 AI 수출 통제, 자립 역량 확보 시급

임상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인공지능 기술 국가 전략무기화
‘AI 주권’은 구호 아닌 생존 전략

미국 상무부는 12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장관 명의의 지침을 통해 AI 기업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사진=연합
미국 상무부는 12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장관 명의의 지침을 통해 AI 기업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사진=연합

미국 정부가 사이버 보안 능력으로 주목받아온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에 대해 외국인 접근을 전면 제한했다. 미국 밖 이용자는 물론 미국 내 외국 국적자, 심지어 자사 외국인 직원까지 사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세웠다. 사실상 첨단 AI를 전략무기처럼 관리하겠다는 선언이다.

미국 상무부는 12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장관 명의의 지침을 통해 이 같은 조치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미국이 반도체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을 제한한 적은 있지만 AI 모델 자체를 통제한 것은 이례적이다. AI 경쟁이 칩을 넘어 모델과 알고리즘, 나아가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치로 앤스로픽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보안 협력체 '프로젝트 글래스윙'에 참여한 한국 기관들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프로젝트에는 삼성전자, SK텔레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국내 기업과 기관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기업의 기술을 활용해 AI 기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려던 구상이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소버린 AI'가 왜 필요한지를 다시 묻고 있다. AI는 더 이상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서비스가 아니다. 경제와 산업, 국방과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최첨단 AI를 소수 국가와 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외국 기술 의존이 커질수록 공급중단이나 규제 변화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는 이미 'AI 냉전' 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최첨단 AI를 전략자산으로 묶기 시작했고, 중국은 국가 차원의 총력전으로 맞서고 있다. 앞으로 AI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를 둘러싼 통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지금처럼 기술과 인재, 인프라 투자에 머뭇거린다면 AI 강국은커녕 기술 소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도 2027년 자립을 목표로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추진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 또 모델 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센터 등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고 공공·국방·산업 현장에서 국산 AI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도 키워야 한다. 특정 AI에만 사이버 보안을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복수의 해외·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하는 다중 공급망 체계도 갖춰야 한다.

글로벌 AI 경쟁은 미국 기업이 최고 성능을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뒤를 바짝 추격하는 미중 양강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은 독자 AI 모델을 가진 3위권 국가로 꼽히지만 이들 양국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는 평가다.

AI 주권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기술패권 시대에 남의 기술에만 기대는 나라가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뒤늦게 위기감을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AI 자립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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