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언박싱 연구실] 햇빛 먹은 배터리가 전기를 뿜어낸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1 06:18

수정 2026.02.11 06:18

<4>이화여대 국가연구소 NRL2.0 연구팀
차세대 고효율 배터리 가능성 열어
우주 하늘에서 충전없이도 전기 제공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이화여대 NRL2.0 연구팀이 밝혀낸 '햇빛 먹는 배터리'의 비밀 원리를 AI로 만든 이미지. 스펀지 구조(MOF) 속 금 나노입자가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증폭시키고 있으며, 이 에너지가 미래형 전기차와 드론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으로 변환되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이화여대 NRL2.0 연구팀이 밝혀낸 '햇빛 먹는 배터리'의 비밀 원리를 AI로 만든 이미지. 스펀지 구조(MOF) 속 금 나노입자가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증폭시키고 있으며, 이 에너지가 미래형 전기차와 드론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으로 변환되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파이낸셜뉴스] 이화여대 연구팀이 햇빛을 활용해 리튬-산소 배터리의 고질적인 문제인 에너지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수명을 크게 늘리는 원리를 밝혀냈다. 금 나노입자가 햇빛을 흡수해 배터리 안에서 에너지를 뿜어내게 함으로써, 충전은 더 잘 되고 수명은 더 길어지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 기술은 전기차와 우주 개발에도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햇빛만 있으면 계속 달린다?

리튬-산소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보다 전기를 10배나 더 많이 담을 수 있어, 사실상 주행거리의 한계를 지워버리는 '괴물 배터리'다. 특히 이번 연구는 충전소에 머무는 대신 햇빛을 에너지로 직접 끌어다 쓰기 때문에, 낮 동안 스스로 전기를 보충하며 달리는 전기차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나아가 충전이 불가능한 우주 공간이나 하늘 위를 오랫동안 날아야 하는 무인 항공기(드론) 분야에서도 멈추지 않는 동력을 제공할 혁신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스펀지 속 금 나노입자, 햇빛을 가두다

연구팀은 실시간 분석을 통해 금 알갱이가 배터리 내부 반응을 지휘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연구팀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특수 물질(MOF, 금속-유기 골격체) 안에 아주 작은 금 알갱이를 집어넣었다. 이 '똑똑한' 금 알갱이는 햇빛을 90% 이상 흡수해 에너지를 강력하게 증폭시킨다. 즉, 햇빛 에너지를 거의 놓치지 않고 배터리 반응에 쏟아붓는다는 뜻이다.

덕분에 빛이 없을 때보다 전기 용량을 최대 1.9배나 더 키울 수 있었다. 똑똑해진 금 입자가 전기를 더 꽉꽉 눌러 담게 도와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화여대 김동하 교수를 필두로 국가연구소 소장인 문회리 교수와 박재홍 교수(이상 이화여대), 영국 링컨대 필립 마르커스 모타 교수, 인하대 함형철 교수가 공동교신저자로 참여하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진이 힘을 모은 글로벌 합작품이다.

■적게 먹고 오래 사는 배터리

전기 낭비는 줄고 수명은 600시간 돌파 에너지 소재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에 발표된 이번 성과는 수치로도 입증됐다. 충전할 때 억지로 써야 했던 불필요한 힘(과전압)을 1.05V 수준으로 대폭 낮춰 전기 낭비를 줄였다. 또한 배터리를 금방 망가뜨리던 찌꺼기 생성을 억제해 600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뛰어난 내구성을 증명했다. 햇빛이 배터리 내부 반응 경로를 직접 통제해 '청정 상태'를 유지해준 덕분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단순히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햇빛이 배터리 내부의 화학 반응 경로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는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와 햇빛을 모으는 태양전지를 하나로 합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이 새로운 플랫폼은 배터리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김동하 교수는 "햇빛이 배터리 내부 반응 자체를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한 연구다"라며 "태양광 수확과 저장을 하나로 합친 차세대 기술의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내일의 기술을 오늘 언박싱해봤습니다. 다음 상자에는 어떤 놀라운 발견이 들어있을까요?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