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헛된 청소년 자살예방 대책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김만기 전국부 차장
김만기 전국부 차장

지난 5월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기자간담회 자리는 책임감보다 무력함이 앞섰다. 장관은 국가 교육 백년대계를 이끌 수장임에도 "최교진 하면 떠오르는 교육정책은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며 본인의 비전 부재를 당당히 시인했다.

한 달 뒤인 6월 9일 교육부를 필두로 15개 부처가 합동 발표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최근 10년간 청소년 자살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에서 정부는 '진로 고민과 학업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정확히 짚었다. 거창한 수식어가 붙은 만큼 단 한 번의 실패가 낙오로 이어지는 사회 구조를 깨뜨릴 거시적 개혁안이 담겼어야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연 대책안은 허무했다.

정부가 내놓은 핵심 방안은 '공교육 기반 청소년 마음근육 강화'다. 교내 사회정서교육을 6차시에서 17차시로 늘리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대학 간판이 없어도 인간답게 재기할 수 있는 '출구'가 없는 숨 막히는 구조 탓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고졸 취업자를 파격 지원하는 고용노동부의 대책이나 학벌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재정경제부의 안목은 없다. 부처별 기존 사업을 '자살 예방' 이름 아래 짜깁기한 백화점식 실적 채우기에 불과하다. 고층건물 출입차단장치나 난간 개량 같은 토목대책이 주요 과제로 이름을 올린 이유다. 결국 정부는 원인이 '사회, 즉 경쟁 구조'에 있음을 알면서도 대책은 '개인, 즉 마음근육'에게만 요구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인 것은 바꿀 수 없으니, 너희가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독한 스트레스를 견뎌내라'는 무책임한 주입이다.

최 장관은 "이름을 내세우는 정책보다 현장에 덜 필요한 정책을 덜어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도리어 학교 현장에 행정적 부담과 새로운 교육 차시를 얹어주며 교사와 학생을 피로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물망이 아무리 촘촘해진들 아이들이 마주한 낭떠러지가 그대로라면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 죽음의 길목을 지키며 감시카메라를 늘릴 게 아니라, 낭떠러지 아래에 패자부활이라는 거대한 안전망을 먼저 쳐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적 개혁, 그것이야말로 범정부 대책에 마땅히 담겼어야 할 진짜 알맹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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