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언박싱 연구실]식물 속 꽁꽁 묶인 바이오 연료를 뽑아낸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5 06:30

수정 2026.02.15 06:30

<5>국민대 김건우 학생이 제1저자로 논문 발표
딱딱한 식물 세포벽 구조를 느슨하게 변형
바이오 연료를 보다 쉽게 추출하게 만들어
세계적 학술지에 학부생 논문 게재 드물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천연 셀룰로오스의 단단한 결정 구조를 유연하게 변형시켜 바이오 연료 추출 효율을 극대화하는 '모양 바꾸기' 공정을 AI로 시각화한 모습.
천연 셀룰로오스의 단단한 결정 구조를 유연하게 변형시켜 바이오 연료 추출 효율을 극대화하는 '모양 바꾸기' 공정을 AI로 시각화한 모습.
[파이낸셜뉴스] 딱딱하게 굳어 있어 활용하기 어려웠던 식물 세포벽인 '셀룰로오스'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변형시켜, 차세대 청정 에너지인 바이오 연료를 훨씬 더 쉽게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국민대 학부생 연구원이 주도한 이번 연구는 산업 공정에서 사용한 약품을 재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모델까지 제시하며 미래 '바이오 공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 이 보물, 어디에 쓰일까?

지구에서 가장 흔한 나무와 풀은 거대한 에너지 창고다. 하지만 식물 몸체인 셀룰로오스는 분자끼리 너무 단단히 엉켜 있다. 마치 견고한 금고 안에 보물이 든 격이다. 이 금고를 열어 에너지를 뽑아내려면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이번 연구가 실용화되면 폐목재나 식물 쓰레기에서 훨씬 쉽게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종이 공장의 화학 공정과 이 기술을 합칠 수 있다. 공장에서 쓰던 약품을 회수해 다시 쓰면서, 남은 찌꺼기로 바이오 연료나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든다. 환경도 지키고 돈도 버는 '착한 바이오 공장'이 탄생하는 셈이다.

■ 상자 속 들여다보기: 연구 과정

국민대 연구팀은 셀룰로오스 금고를 열기 위해 '모양 바꾸기' 실험을 했다. 수산화나트륨과 에틸렌디아민이라는 약품을 사용했다. 천연 상태인 '셀룰로오스 I'에 이 약품들을 넣자 촘촘했던 분자 배열이 뒤흔들리며 새로운 형태로 변했다.

연구팀은 이 변화를 확인하려 X선을 동원했다. 물질에 X선을 쏘면 내부 구조에 따라 특정 각도로 빛이 튕겨 나오는데,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뼈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신한 셀룰로오스에 '분해 가위'인 효소를 넣어 얼마나 잘 잘리는지 확인했다.

■ 언박싱 결과: 데이터가 증명한 반전

셀룰로오스는 놀라운 변신을 보여줬다. 첫째, X선 분석 결과 천연 상태일 때만 나타나는 고유한 신호인 22.6도 각도의 빛줄기가 사라졌다. 22.6도는 셀룰로오스가 아주 단단하게 뭉쳐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문'이다. 이 신호가 사라졌다는 것은 굳게 닫혔던 금고 문이 드디어 열렸다는 결정적 증거다.

대신 구조가 느슨해졌음을 알리는 새로운 신호들(12.1도, 11.6도 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둘째, 실제로 금고 안은 훨씬 말랑해졌다. 천연 셀룰로오스의 단단함(결정화도)은 약 84.5%였지만, 약품 처리를 하자 약 43.9%까지 떨어졌다. 단단함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만큼 효소가 침투할 길이 넓어진 것이다.

셋째, 실제 현장에서도 통했다. 연구실 샘플뿐 아니라 실제 산업용 목재 펄프에서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공정 약품을 재활용하는 시스템까지 제안해 경제성까지 함께 증명했다.

■ 학부생의 열정이 일군 세계적 성과

논문 포장지를 벗겨보니 그 안에는 학부생 연구원의 도전과 영리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제1저자가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건우 학생이라는 사실이다. 김건우 학생은 김형진 지도교수의 가르침 아래, 학부생으로서는 쉽지 않은 정밀 분석과 실험을 끈기 있게 수행했다.

그 결과, 고분자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폴리머스(Polymers)'에 논문을 게재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학술지는 해당 분야 상위 20%에 속하는 권위 있는 저널이다. 교수진과 학생의 긴밀한 협력이 실험실 안의 아이디어를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로 꽃피운 셈이다.


딱딱한 식물을 말랑하게 풀어낸 이 '열쇠'가 우리 미래를 더 푸르게 바꿀 것입니다. 오늘의 언박싱은 여기까지 입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