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실종신고도 묵살?'…허위종결이 불러온 경찰 불신
"실종자 위험한데 '업무많아 종결' 말되나"…"경찰 업무처리 근본적 개선 필요"
'내 가족 실종신고도 묵살?'…허위종결이 불러온 경찰 불신
"실종자 위험한데 '업무많아 종결' 말되나"…"경찰 업무처리 근본적 개선 필요"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 실종신고 허위 종결'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현직 실종 담당 30대 경찰관 A 경장이 '일이 부담된다'는 단순한 이유로 여러 건의 실종신고를 묵살한 것이 알려지자, 경찰을 향한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전임 경찰 수뇌부의 공식 사과에 이어 고평기 전 제주경찰청장이 승진 인사에서 누락됐고, 신임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민 불신이 임계점을 넘어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취임 첫 날부터 긴급히 제주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여성이 두 달이나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 실종자가 극단적 위험 상태임을 알린 신고 등 간절함과 절박함이 담긴 국민의 요청이 현직 담당 경찰관에 의해 무시된 이후 실종자들은 백골 상태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A 경장은 성인 실종자뿐만 아니라 실종아동법에 의한 보호 대상자인 아동 등의 기록도 허위로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땅에 떨어진 경찰 신뢰는 A 경장 개인만의 일탈이 아니며, 이번에 드러난 시스템적인 문제를 진단·개선해야 경찰을 향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골든타임' 놓친 건 허술한 시스템도 원인
3일 온라인상에는 "업무 부담이 큰 것과 허위 종결이 무슨 연관성이 있냐?", "허위 종결이 경장 한명뿐일까?"라는 내용의 게시물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가족 등의 절박한 신고를 외면한 이유가 경찰관의 근무 태만과 업무 부담만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없으며, 또 다른 경찰관의 허위 종결 사례도 있을 수 있지 않냐는 글이 다수 게시됐다.
또 "나도 몇 달 전 실종 신고를 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경찰 믿을 수 있나?, 내 신고도 대충 처리한 것 아니냐?'는 불신과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심리분석관) 5명을 동원, A 경장의 허위 종결 사유를 조사한 뒤 '누적된 업무 부담과 책임가중에 대한 피로감 속에 업무 태만한 동기'가 주된 배경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 배경을 '개인의 일탈'이라는 취지로 발표하고 실종 사건의 허위 종결을 막기 위한 관리자 승인의 '이중장치' 마련을 약속했지만, 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우선 실종팀의 인력 부족 문제가 거론된다. 인력 부족이 A 경장 범행의 핑계가 될 순 없지만, 향후 실종사건 업무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문제점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제주서부경찰서 실종팀 등 도내 각 경찰서 실종팀 인원은 각각 4명이다. 4명의 실종팀 경찰관이 2인 1조로 주간 근무를 서고 한 명씩 야간당직을 서고 있다. 주야간 근무후 비번, 휴무일의 교대 근무 등으로 인해 실종팀에 남은 업무 모두가 사실상 각자의 업무가 되는 구조다.
그에 따라 경찰 내부에서는 성인 가출, 실종 등을 제때 처리하려면 당연히 실종팀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자체 종결 체계와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야간 당직 시에는 담당자 1명이 112신고에 접수된 사건을 판단하고 종결까지 혼자 할 수 있게 된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배경으로 분석된다.
A 경장이 허위 종결한 실종 신고를 모른 채 다른 부서 상급자가 승인해 주는 일도 있었던 만큼 허위 기록을 걸러내거나 즉시 확인할 체계가 전혀 없었다.
또한 A 경장은 지난 5월 30대 여성 장모씨의 실종 사건에 대해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 관리목록의 내용을 실종자가 사망했다며 허위로 삭제했지만, 경찰은 지난달 수사 진행 이후에서야 이를 파악하는 등 3개월간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관리목록을 담당 경찰관이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됐다는 경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사건 접수 후 수색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30대 여성 장씨가 최초 실종 신고된 지난 5월 15일 오후 제주시 한림항 일대를 수색하던 한림파출소 직원들은 A 경장이 거짓말로 '장씨와 연락됐다'며 사건을 종결하자 허위 종결인지도 모르고 수색 중 철수했다.
파출소 직원들이 신고자인 남자친구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A 경장의 보고와 별도로 상황실 등이 파출소 직원을 통해 장씨의 안전을 확인하는 '이중 확인' 장치가 없었다.
5월 15일 첫 실종신고가 무위로 돌아가고 지난 7월 장씨 실종 재신고까지 2개월 이상 시간이 지나 주변 폐쇄회로(CC) TV 영상 녹화 장면 등이 자동 삭제됐기 때문에 장씨 죽음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증거도 사라졌다.
경찰은 지난달 장씨 시신 발견 직후 타살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자살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이어가다 명확한 사인을 밝힐 증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제는 '사인 불명'이라며 신중한 태도로 물러섰다.
◇ 경찰관 1명이 사건 27건 조작
A 경장은 지난해 3월 10일부터 지난 7월 23일까지 제주서부경찰서 실종팀에 근무하며 자체 종결한 298건 중 27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11건은 허위로 실종 사건을 종결한 사례다.
A 경장은 지난달 2일 실종 신고된 60대 남성 박모씨 사건의 경우 '박씨와 연락이 닿았다'는 취지의 거짓말로 신고자를 안심시킨 후 종결하는 등 11건을 허위 종결했다.
또 다른 16건에 대해서는 장씨 사례를 포함해 경찰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상에 '실종자가 사망했다'는 허위 내용으로 관리목록 기록을 무단 삭제했다.
경찰은 장씨 재신고 후 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중 A 경장의 범행을 인지하고 지난달 14일 정식 입건한 후 같은 달 25일 구속했다. 이어 경찰은 지난 1일 A 경장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지난달 19일 장씨 실종 재신고 후에도 한동안 추가 인력 보강 없이 수색을 진행했고, 이후 형사팀 인원이 보강됐지만 A 경장의 허위 기록에 발목이 잡혀 집중 수색 돌입이 한 달 넘게 지연됐다.
실종신고 허위 종결 이후 박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제주 모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장씨의 시신은 지난달 24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수습됐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