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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 발행 유효판결 서울고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6.23 04:41

수정 2014.11.07 14:14


삼성전자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450억원대의 사모(私募) 전환사채(CB)를 발행한 것은 유효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변동걸 부장판사)는 23일 ‘삼성전자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450억원대의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한 뒤 이에 따라 신주를 발행한 것은 편법증여’라며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전환사채 발행무효확인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주가 아닌 사람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경영지배권 강화의 목적이 개입될 경우에는 위법하다”며 “이 사건 전환사채 발행도 지배권 강화의 목적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재용씨가 인수한 전환사채 규모가 삼성전자 전체 주식의 0.9%에 불과해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문제가 된 전환사채는 발행 당시 주가 등과 비교할 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전환사채가 발행된 이상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 등을 묻거나 전환사채 인수자에게 차액을 추가로 납입해줄 것을 청구하는 것은 별도로 논의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무효는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현행 상법 규정상 이사회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주가 아닌 사람’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할 권한이 있다”며 “따라서 삼성전자가 재용씨 및 삼성물산을 전환사채의 인수인으로 결정하면서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의 결론과 별도로 현행 상법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우선 신주발행에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인정된다면 전환권 행사에 의해 주식으로 변할 수 있는 전환사채에 대해서도 우선적 매수권을 인정해야 하는데 상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사모방식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결과적으로 회사의 경영지배권을 변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공모방식에 의하도록 하고,사모방식으로 발행할 경우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문제의 전환사채 발행에 절차상 하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제도자체의 목적에 어긋난 것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지만 이미 전환사채가 발행돼 유통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거래의 안전과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무효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따라 현행 상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재용씨의 삼성전자 승계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판부가 장교수가 주장한 거의 모든 부분을 인정한 데다 현행 상법의 맹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같은 결론을 내렸음을 밝혀 오히려 사모전환사채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게 됐다.

한편 장교수측은 이날 즉각 상고할 뜻을 밝혀 최종 승부는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장교수는 1997년 3월 삼성전자가 600억원의 사모전환사채를 발행,재용씨가 450억원 어치를 매입한 뒤 같은해 9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자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 변칙 증여”라며 전환사채 발행무효소송과 함께 주식상장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소송에서 패소하자 항소했다.

하지만 주식상장금지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져 재용씨와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600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은 상장이 불허된 상태였다.

/권순욱 drea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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