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꽁트-김영두] 사이버 골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6.28 04:42

수정 2014.11.07 14:10


“ 나 지난 일요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챔피언코스에서 이븐파를 쳤어.”

“ 별 것도 아니네 머, 나는 남아프리카의 로열 케이프 코스 15번 파3홀에서 홀인원도 하고 크리스 리틀이 세운 코스레코드 기록도 깼지.내가 66타를 쳤거든.”

“ 난 일주일에 한번은 홀인원을 하는데?. 이제 겨우 처음 해봤단 말이지?”

뒷자리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말을 듣고 나는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서른을 갓 넘겼을까,준수하고 깔끔하게 생긴 신사들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커피�事潔駭名�나는 흘끔흘끔 그들의 모양새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얼굴은 물론 손과 목덜미도 귀족처럼 희고 고왔다.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이븐파나 66타를 칠 골퍼는 아니었다.내가 만난 싱글 핸디캡퍼나 프로 골퍼는 농사꾼하고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그을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더욱이 그들의 목덜미는 청동빛으로 반짝반짝하게 빛이 났고,햇빛에 노출되어 검게 탄 오른손에 반해 장갑에 싸여있던 왼손은 흰,짝짝이 손의 소유자들이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일주일에 한번씩의 홀인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홀인원은 남녀의 방사를 나타내는 은어이기도 하다.은어로 쓰였다면 일주일에 한번의 홀인원은 자랑할 것도 못된다.그렇다면 페블비치 골프링크스 챔피언 코스에서 이븐파나 로열 케이프 코스에서 66타라는 소리는 더욱 수상하다.사실이라면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사건이 아니겠는가.그렇다면 저 사내들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정신병자든지 세상에서 제일가는 거짓말쟁이들이 아닐까.

그러나 조금 있다가 느긋하게 걸어 들어온 다른 사내에 의해서 의문은 풀렸다.

“난 이제 골프는 시시해서 안하기로 했습니다.낚시를 하기로 했어요.낚시는 조이스틱 대신 진짜 릴 낚싯대를 쓰거든요.정말로 낚싯대가 파르르 떨리는 손맛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의 도마에 올라있던 골프는 사이버 골프였던 것이다.

내 아들녀석은 스타크래프트 ‘쨩’ 이다.녀석이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만 붙들고 앉아서 가상의 적과 전쟁을 한다.나도 겔러그,테트리스,수퍼마리오까지는 해봤다.너무 과격하게 조정하다가 조이스틱이 부서지기도 했다.요즘도 DDR는 아들녀석과 같이 뛴다.

컴퓨터 게임 중에는 골프도 있다.자신의 성별과 키와 몸무게를 수치로 입력한다.팅그라운드에 올라서서는 클럽도 선택하고 스윙의 크기도 정하고 티의 높이도 맞춘다.모니터에 펼쳐지는 코스에서도 바람의 방향과 장애물과 그린의 기울기도 읽을 줄 알아야 좋은 점수를 낸다.세계의 유명한 골프코스는 다 입력이 되어 있어서 10초안에 자기가 원하는 골프 코스를 불러낸다.골퍼라면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방문하고 싶어하는,마스터즈의 무대인 오거스터 내셔널 코스에서도 원하는 시간에 부킹없이 라운드한다.뿐만 아니다.잭 니클로스든지 아놀드 파머나 타이거 우즈를 동반자로 택할 수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또한 백견이 불여일촉이다.골퍼들은 봄에 꽃놀이를 가지 않는다.가을에도 단풍놀이를 가지 않는다.18홀 안에 꽃도 나무도 새도 물도 바람도 다 있다.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지름 108㎜의 홀에 공을 넣기까지 108번뇌가 있다.

잔디를 밟아보지도 않은 사이버 골퍼와 어떻게 진짜 골프의 재미를 논한단 말인가.홀컵에 공이 굴러 떨어지는 순간의 전율이 어떻게 사이버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진짜 골프는 너무 재미가 있다는 것이 흠이라고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소설가>

알림

이화여대 물리학과 출신인 필자는 1988년 월간문학(소설),중앙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대머리 만만세’,‘아담 숲으로 가다’ 등이 있다. 골프는 구력 11년에 핸디캡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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