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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실리콘밸리를 찾아서 4] 산호세 실리콘밸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6.28 04:42

수정 2014.11.07 14:10


실리콘밸리의 명성은 이제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으로 묻혀지는가.

최근 들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제 실리콘밸리의 수명은 다했다며 새로운 실리콘밸리,즉 ‘제2의 실리콘밸리’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실제로 산호세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실리콘계곡은 세간의 관심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캘리포니아의 날씨만큼이나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했다.

겉으로 봐서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쇠락의 기미마저 관찰되는 실리콘밸리였다.세계 첨단산업의 핵심 축을 뒤흔드는 지각변동의 와중에서 실리콘 밸리는 영영 침몰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올 만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차례 숨고르기를 하며 세계 첨단산업의 오늘을 일군 ‘터줏대감’으로서의 저력을 지켜내고 있었다.그리고 그 저력의 밑바탕에는 실리콘밸리만이 가지고 있는 인적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전체 투자의 47%가 실리콘밸리에서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이 실리콘밸리에 투자되는 전체 액수의 75%가 소프트웨어개발에 투자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사를 제치고 최근 주가총액 1위로 부상한 시스코 시스템스의 마케팅팀의 한 직원은 “외부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실리콘밸리는 흔들리고 있지 않다”며 “다만 각 주 정부에서 현재 실리콘밸리로 집중되고 있는 투자를 분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 주의 중점도시를 집중적으로 테크노폴리스로 육성하는 노력이 상대적인 실리콘밸리 위축론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는 최근 벤처기업을 포함해 이곳에 들어서 각종 기업들의 재편성 작업이 활발하고 있다.즉 실리콘밸리 출발 때의 모습을 다시 찾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밸리 전체가 ‘굳히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빌 게이츠가 최근 소프트웨어 섹션을 이곳 산호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만 봐도 변화의 물결은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실리콘밸리 전체 업체들이 어떤 그랜드플랜을 가지고 지역 전체를 재편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개개의 기업들이 각자의 조건과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자연스러운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즉 시스템통합을 주로하는 기업은 하버드와 MIT가 있는 뉴잉글랜드 지방으로,국방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는 워싱턴 DC로,멀티미디어 장비개발업체는 분위기와 투자조건이 조화되는 뉴욕으로,바이오산업은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미 동부로의 이동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의 수축론의 발단이 된 것은 지난 1월 미 월스트리트저널의 전격적인 선언 이후였다.선언의 내용은 “더이상 월스트리트는 실리콘밸리를 따라가지 않는다”였다.닷컴이코노미와 동의어인 소위 신경제(NEW ECONOMY)에 더이상 기대와 희망을 무턱대고 가지지 않겠다는 요지다.

언뜻 들으면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미 금융계가 실리콘밸리를 버린 것처럼 들리지만,실상은 그렇지 않다.즉 실리콘밸리가 이제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때가 됐다는 실무자들의 충고인 셈이다.철저히 미국적인 논리이며 발상으로 지난 2년 동안의 카오스상태로까지 무작위로 팽창해온 실리콘밸리가 이제는 실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라는 엄중한 경고인 셈이었다.

지금까지 샐리콘밸리를 전 세계에 알리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던 원동력은 말그대로 “현란한 테크놀로지의 시범”이었다.수익성 없는 모델을 내놓고도 겉으로 보이는 기술수준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수만 있으면 거의 무제한적인 펀딩이 이뤄졌던 것이 지난 실리콘밸리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변화물결에 가장 피부에 와닫는 실례를 제공한 것이 바로 아메리카온라인과 워너브라더스사의 합병이다.미국 최대의 회원수를 자랑하고 있는 온라인 IP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이 ‘굴뚝기업’인 워너브라더스와 합병을 함으로써 비로소 순익을 내는 모델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쇠토론에 대해 현지 기업인들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실리콘밸리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돈으로만 이뤄진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이들은 돈을 ‘하드 머니’와 ‘소프트 머니’로 대별하고 있다.실리콘밸리는 종이화폐보다는 인적네트워크로 대표성을 확보하는 소위 소프트머니가 집중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즉 이 인적네트워크가 무한으로 발산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실리콘밸리에서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벤처창업을 기획하고 실제 준비에 들어가 제기능을 하는 기간이 평균 1주일 정도다.

물론 이들 중 반 이상이 창업과 거의 동시에 먼지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만 그만큼 떠오르는 기업도 적지 않다.이 현상은 바로 실리콘밸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역동성’은 뉴욕의 ‘실리콘앨리’나 보스턴 ‘테크노벨트’,‘실리콘 사막’이라 불리는 앨버커키 등 이른바 ‘제2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실리콘 밸리만의 값진 자산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높은 인건비,까다로운 입지조건 등을 이유로 실리콘밸리를 떠났던 소프트웨어 벤처들이 속속 유턴을 하고 있다.한국소프트웨어인큐베이터(KSI) 김종갑 부장 따르면 실리콘밸리를 떠났던 바이오업체,시스템벤처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첨단소프트웨어들이 적어도 한달에 10여업체 이상 실리콘밸리로 ‘귀향’하고 있다.실리콘밸리만큼 인적네트워크와 주변 분위기가 잘돼 있는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비관론자들이 내놓는 이런저런 어두운 예측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의 미래에 드리워진 구름이 결코 두껍게 보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실리콘밸리만의 그같은 역동성과 인적네트워크 때문이다. 산호세=고현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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