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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입체진단 6] 일본서 본 금융구조조정 1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6.29 04:43

수정 2014.11.07 14:09


‘가부토초’는 150여 개 증권관련 회사가 밀집한 도쿄의 증권가(街)다. 80년대 무역흑자와 주가상승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던 곳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자마자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투자 손실을 떠안은 채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올들어 가부토초는 아직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금융 구조조정과 일본 경제의 회복에 힘입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본 기관투자가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아직 국외주식 총 투자액의 1∼2%에 불과하고,국외보다는 회복 기미를 보이는 자국 주식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V자형의 회복세를 보이자 최근 한국 증시에 눈길을 돌리는 투자가가 늘고 있다. 4월 4∼5일 도쿄에서 열린 한국 주식투자 설명회에는 일본의 130여 금융기관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아직은 조심성 많은 일본인이 변화무쌍한 한국 증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가부토초에서 만난 미쓰이(三井)생명 에셋매니지먼트의 펀드매니저 하시즈 메켄지(橋爪謙治) 부장은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상할 수 없다”고 푸념한다. 나름대로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잘 안다고 자부해 왔는데 최근 한국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발표하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가 수시로 바뀌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있어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며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계획을 세우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가부토초의 투자가들은 1년여 만에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적 요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높은 점수를 매긴다.또 금융개혁의 성과를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최근 금융시장이 다시 경색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이때문에 당장 한국에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것으로 보는 투자가는 별로 없다.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 투자고문의 펀드매니저인 스즈키 이타루(鈴木至) 부장은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이것이 투자와 내수를 진작하는 형태로 전반적인 경기 회복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5% 수준으로 떨어진 실업률과 지속적인 물가안정, 8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 등도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를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금융개혁은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스즈키 부장은 정부의 강력한 1차 구조조정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2차 구조조정의 큰 밑그림이 아직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시장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유보적인 판단을 내렸다.

닛세이 기초연구소는 6월 보고서에서 보험·투신 등 비(非)은행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해 30∼50조원의 추가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른 재정부담과 대외 신인도 하락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99년말 현재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총액은 51조원으로 총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년 전 10.4%에서 8.7%로 낮아졌다. 그러나 상환 능력을 감안한 새로운 자산 건전성 분류기준(FLC) 을 적용하면 총 부실채권 규모는 약 67조원으로 불어나 3월 말에 비해 1조3000억원이 증가한다.

“그 동안 실시한 금융개혁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 국가 신인도가 회복됐지만 이제부터는 금융부문과 재벌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2단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특히 증시의 개혁과 안정은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의 선결 과제로 지적된다.
투자자문회사인 마켓애널리스트의 카사하라 타카지(笠原高治) 사장은 “대형 우량주의 경우 외국인 투자가의 주식보유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외국인 투자가가 주식을 대량 매도할 경우 이를 받아줄 기관투자가가 취약해 시장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주도의 금융정책도 비난의 대상이다.카사하라 사장은 “지난해 기업들이 과도하게 증자를 했지만 이를 제대로 점검하는 기관이 없었다”면서 “경제가 잘 되려면 반대 의견을 말하는 곳도 필요하다.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정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을 잘 모르는 관리들이 금융정책과 시장운용을 좌지우지 한다”고 꼬집는다.

“증시는 경제의 심장이다.심장이 약해지면 팔이나 다리를 비롯해 온 몸이 힘을 잃기 마련이다”며 증권시장의 국제화와 효율적인 운용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도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다.

/ iychang@fnnews.com 장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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