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땜질식 금융정책 안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02 04:44

수정 2014.11.07 14:06



지난 주말 금융감독원은 은행,투신 등 금융기관의 부실여신과 부실자산으로 인한 잠재손실 규모가 모두 5조8979억원으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하였다.금융감독원이 왜 지난 3월말 기준으로 각 금융기관별 잠재적 부실의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불신의 대상이었던 금융기관의 부실규모를 공개해 시장불안을 일시에 해소하자는 절박감에서다.또한 발표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부실공개를 시장이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다.그 동안 오락가락을 반복했던 정부의 금융정책을 감안할 때 또 다시 부실을 공개하고 믿어달라는 정부발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금리는 안정을 찾고 있지만 이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에 따른 결과이지 시장의 자생력이 강화된 것은 아니다.채권펀드의 조성에 의한 회사채시장 안정은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다.상반기 말에 몰려있던 대규모 회사채상환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하반기 중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30조원에 달하고 이중 9조8000억원이 12월에 몰려있다.금융시장의 체력을 보강하지 않는다면 올해 말에 가서 또 다른 이름의 채권펀드 조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따라서 시중 부동자금을 은행신탁이나 투자신탁의 장기상품으로 유도하는 등의 직접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시장 기초체력을 보강하면서 구조조정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1998년 1차 금융구조조정 이후 정부는 정리보다는 취약 금융기관의 존속을 위해 자금을 지원해 왔다.하지만 공적자금지원 기관들이 자생력을 회복하여 가는 추세는 찾아보기 어렵다.하반기에도 정부가 공적자금을 사용하여 부실금융기관에 개입해야 될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이경우 공적자금의 투입원칙은 청산방식에 의한 정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지금과 같은 회생원칙의 정부개입방식은 취약한 금융기관들이 강도 있는 자구노력을 하기에 앞서 공적자금의 투입이라는 용이한 탈출구에 의존하게 하는 행태를 조장하고 있다.퇴출원칙이 확립되어야 취약금융기관의 자구노력 강도도 높아질 것이다.공적자금의 투입에 논란이 일고 있으나 투입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책임의 원칙을 적용하여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차단하는 것이다.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공적자금으로 부실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를 깨끗이 청소해 준다거나 금융기관들을 합병시킨다고 해서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는다.과거 위기극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취할 수밖에 없었던 투자자 지원이나 부실 금융기관 및 기업의 소생을 위한 자금지원 등과 같은 일부 불합리한 정책관행들이 향후에는 다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은 자금경색에서 비롯되었고 근본적 원인은 구조조정에서 초래되었다.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업부실이 심각한 수준이고 이는 다시 금융부실로 직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구조조정이 신속히 진행되지 않으면 또 다시 위기는 찾아올 수 있다.부실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워크아웃기업에 대해서 겉치레가 아닌 실질적인 부채탕감을 실시해 금융권의 부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또한 기업 퇴출이나 분할과 더불어 M&A가 기업의 의사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경영합리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기업의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대출 인센티브제도의 도입도 중요하나 신용도에 따라 차별화된 대출시장이 필요하다.기업이 신용에 맞는 금리를 지급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시장을 다양화시켜야 한다.정부는 더이상 임기응변적인 땜질정책에 매달려서는 안된다.시장의 체력을 보강하고 원칙이 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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