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 9년호황 비결은 그린스펀의 '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02 04:44

수정 2014.11.07 14:05


9년째 호황을 누리는 미국 경제의 ‘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USA투데이지가 최근 정답을 제시했다. 다름아닌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구체적으로 말하면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그 버팀목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88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금리를 1.75%포인트 올렸고, 올해도 1%포인트 인상한 상태다.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또 올릴 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그린스펀의 머리 속은 오로지 인플레이션 억제와 연착륙(Soft Landing)으로 꽉 차 있다.

USA투데이지는 대통령 선거에 초연한 FRB의 철저한 ‘탈(脫)정치’가 오늘의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FRB는 전통적으로 집권당 후보와 잦은 갈등을 빚어 왔다. 집권당 후보치고 금리 인상과 긴축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실제 FRB는 과거 10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직전 5차례나 금리를 올린 전력이 있다.

특히 지난 80년,당시 FRB 의장이던 폴 볼커는 선거 몇 주를 남겨놓고 금리를 1.75% 포인트나 올리는 바람에 정권교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해 전 자신이 임명했던 볼커 의장에게 섭섭한 심정을 토로한 채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볼커는 오늘날 미국 경제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92년 부시(공화)와 클린턴(민주)이 맞붙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열렸다. FOMC는 FRB의 정책결정 기구로 당시 그린스펀이 위원장이었다.

회의에서 몇몇 위원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자 다른 위원들이 투표를 며칠 앞두고 금리를 내렸다간 FRB가 현직인 부시 후보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살까 우려했다. 결국 금리는 내리지 않았다.

회의 직후 그린스펀은 이례적으로 기자들을 불렀다. 그는 “FRB가 부시를 돕는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금리 인하를 유보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FRB가 부시 편도 클린턴 편도 아니며 오직 경제논리에 기초해 금리를 결정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내심 금리 인하를 바랐던 부시는 공화당 정권이 임명한 그린스펀의 ‘배신’에 분노했지만,역사는 그린스펀의 용단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금리 인상이 반드시 집권당 패배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투자자문회사인 뱅크원의 조사에 따르면 FRB는 과거 10차례 대선에서 모두 다섯차례 금리를 올렸다. 이 가운데 집권당 후보가 세차례 이겼고,두차례 졌다.

예컨대 지난 88년 대선이 있던 해 금리가 1.75%포인트 올랐지만 당시 부통령이던 부시 후보가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거꾸로 금리가 떨어진다고 집권당 후보가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다. FRB는 과거 다섯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금리를 내렸지만 집권당이 이긴 것은 고작 두차례 뿐이다.

그린스펀은 1987년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이 의장에 임명했다.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위상은 끄떡 없다.
올해로 의장직만 13년째인 ‘고참’이다. 대통령은 중임을 해도 8년을 넘지 못한다.
미국인이 왜 그린스펀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지 알만하다.

/ wall@fnnews.com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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