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경협의 올바른 방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09 04:46

수정 2014.11.07 13:58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분위기가 우호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8·15를 기해 서울과 평양에서 200가족의 상봉이 이뤄지고 곧이어 정기적인 만남의 장소도 개설될 것이다.가족과 헤어진 지 50여년 만의 상봉은 인도적 차원에서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일로 연로해진 실향민들의 막힌 가슴

을 틔워주는 쾌거라 할 수 있다.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내용 중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대목은

단순교역 단계를 넘어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남북경협의 방향을 예고하고 있다.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은 역시 경제분야에서 가장 먼저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한반도의 경제협력은 우선 남측이 자본과 기술을 대고 북측이 노동력과 장소를 제공,세계를 겨냥할 것이다.따라서 단편적이었던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가 한 차원 높은 개발협력으로 승화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해를 제외한 지난 10년 동안 후퇴를 기록,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현재 북한의 산업시설 가동률은 에너지와 부품공급 부족으로 30%이하에 머물고 있다.도로 항만 에너지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태부족이다.실질적인 경협활성화를 위해서는 운송 및 인프라스트럭처 정비가 시급하다.

남북경협 실적은 88년 이래 총 2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경협의 내용도 북한의 저임을 이용한 임가공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투자를 확대하여 남북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면 북한 내부의 실질적인 변화와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사회간접자본시설의 개선과 더불어 그동안 경협을 더디게 하고 있었던 개방정책의 폭과 깊이에 대한 의구심을 일소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여건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이번 정상회담은 우선 이러한 정치·안보적 여건의 개선을 위한 물꼬를 튼 것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선언적 합의문을 실천하기 위한 관련 당국자간의 협의를 통해 북한과 파트너를 이뤄 서로에게 득이 되는 경협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경협추진은 기업인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정부는 기업차원에서 할 수 없는 기반시설의 구축,제도적 개선,투자환경 조성 등 외부 여건을 성숙시켜야 한다.따라서 이를 위해 경협 당국자회담에는 기업인도 동참하여 투자보장의 범위·방법과 분쟁조정 절차 등 실천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

향후 남북경협의 큰 틀은 장기적으로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짜여져야 한다.긴 안목에서 대북 투자 방향을 볼 때 고임금으로 남한에서 사양화되고 있는 섬유,의류 등의 경공업의 북한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물론 북한의 수요가 일어날 때까지 당분간은 경공업의 대북투자가 규모나 소요기간 등으로 볼 때 유리해 보이나 국제화시대의 투자적지는 되지 못한다.저임금을 찾아 북한으로 간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또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고물류비는 저임금의 메리트를 상쇄할 수도 있다.차라리 저임금의 이점을 찾는다면 북한보다 더 낮고 생산성도 보장되는 중국이나 베트남이 유리할 것이다.

통일 이후 한반도의 산업 구조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대북 투자의 비중은 중화학공업에 주어질 수밖에 없다.앞으로 한반도 경제의 주축은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공업과 신지식정보 분야가 될 것이며 통일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분야의 대북투자는 우선 노동 집약적인 중화학 공정을 북한으로 이전하고 점차 자본집약도가 높은 쪽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의 지하자원을 활용하는 중공업의 경우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훼손의 우려가 있는 산업은 투자를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도 경공업보다는 이를 선호하고 있어 제도적 안전 장치의 마련에 쉽게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러한 단계별 경협의 추진으로 북한 노동자에 대한 기술이전도 가능하고 통일시대를 겨냥한 한반도 산업구조 조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경공업도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분야,갈 수 있는 기업은 북한에 가야 한다.다만,우선 경공업이 진출하고 그 후에 중화학 공업이 진출하는,일종의 순차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가능한 경공업은 진출하되,지금부터라도 중화학 공업에 초점을 두자는 것이다.

대북경협의 활성화는 의욕만으로 추진될 수는 없다.제도와 인프라스트럭처의 개선 등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대책과 함께 막대한 투자재원의 조달을 위해서도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중화학공업의 대북투자 재원은 국제기구와의 공동투자,외국자본과의 제휴 등을 통한 조달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남북경협의 큰 물꼬는 트였지만 이제 당국자 협의과정에서 준비는 철저하게,협상은 치밀하게,그리고 실행은 차분하게 추진하여 통일 한반도의 밑그림을 튼실하게 그려가야 할 것이다.

shyoo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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