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꽁트-김영두] 내조와 자랑 피(Fee)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2 04:46

수정 2014.11.07 13:55


내가 속한 골프모임에는 일반적인 운영규칙 이외에도 몇 개의 규칙이 더 있다.지각을 하면 만원, 결석을 하면 3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또, 자랑을 할 때마다 ‘자랑 피(fee)’를 내야 한다. 자식자랑은 만원, 남편자랑은 2만원, 본인 자랑을 하려면 3만원을 내야 한다.애완견 자랑은 5000원으로 정했다.개와 인간을 동격으로 취급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해괴한 규칙이 생긴 까닭은 연숙이 때문이다.지각도 자랑도 도맡아서 한다.연숙이가, 경식이 아빠가 어쩌고, 하면서 서두를 꺼낼라치면 다들 귀를 막고 손을 내민다.계속하려면 2만원을 내라는 뜻이다.

“경식이 아빠가 5만원 줬어.돈 내고 내 자랑 자기 자랑 합해서 하라고.”

보란 듯이 만원권 다섯장을 꺼내놓는다.이러는데야 안 들어 줄 수가 없다.연숙이는 돈을 낸 만큼 자랑보따리를 장황하게 펼친다.

“엊그저께 경식이 아빠하고 라운드를 했는데 경식이 아빠 76타 친거 아니겠어? 주말 골퍼가 대단하잖아.나는 몇 타 쳤는지 물어봐 줄래?” 들어줄 영양가도 없는 소리지만 우리는 자랑피를 챙겼으므로 무한한 인내심으로 경청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뜸들이지 말고 빨랑 말해.나 바빠.”

“호호… 85타… 너무 못쳤지?” 연숙이는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제 자랑 끝났니? 나 집에 가도 돼?”

“안돼 마저 들어줘야지. 돈 냈잖아.날더러 열심히 하랬어.그래서 싱글치면 싱글기념으로 중국 여행가자고 했어.”

“조만간에 세계일주하겠네…”

연숙이와 나는 골프에 있어서 맞수다.연숙이의 남편과 내 남편도 스크래치로 겨룬다.어쩌다 두 부부가 같이 라운드를 하기는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성별을 갈라서 따로 논다.남자들은 주로 주말에, 여자들은 평일에 라운드한다.네 사람의 승률은 모두 5할이다.두 번에 한 번씩 이기고 진다.

내일은 내 남편과 연숙이의 남편이 같이 필드에 나가는 날이다.내 남편이 두 번을 연거푸 이겼다.확률로 따지면 이번에는 연숙이 남편이 이길 차례다.

지난주 토요일은 연숙이네 결혼기념일이었다.금실이 좋은 그들이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의 밤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식이 아빠가 다리가 후들거려서 졌대.요번 주는 각오하라던데….”

품으로 파고드는 나를 밀어내며 남편이 밉살맞게 하는 말이다.라운드 전날 진액을 빼면 필드에서 힘을 못쓴다고,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들먹이며 아들 방으로 도망쳐버린다.

홀로 남은 나는 베개를 안고 앉아서 잔머리를 굴린다.지금 연숙이네 집에 전화를 걸어 방금 우리가 얼마나 황홀한 부부관계를 치렀는지 침을 튀겨가며 자랑을 하자.자랑피는 월요일에 온라인으로 송금한다는 전제를 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순진한 연숙이는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일찍 눈을 붙이려는 남편을 들볶을 것이다.내 머리 속에서는 내일 골프장에서 일어날 일이 영화처럼 흐른다.연숙이 남편은 지난주처럼 샷을 망치고, 내 남편은 연숙이 남편의 지갑을 털 것이다.나는 남편의 음성적 소득에서 세금을 뜯어 연숙이에게 자랑피를 문다.그래도 공 한 다스 살 정도의 이익은 발생할 것이다.아니 한번 라운드비용 정도는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이거야말로 내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소설가)

/jdgolf@fnnews l 이종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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