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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야기-강길부] 용인,산자의 휴식공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2 04:46

수정 2014.11.07 13:55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生居鎭川死居龍仁)’ 이라는 말이 있다. 그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살던 신혼의 남자가 산등성이에서 바위에 누워 잠을 자다가 산꼭대기에서 굴러온 큰 바위에 깔려 죽었다. 혼령이 염라대왕에게 갔을 때 아직 천수가 다 되지 않았다 해서 이승으로 돌아 오게 되었는데 시신이 바윗덩이에 눌려 흙에 묻혀있는지라 접신하지 못하고 혼령이 떠돌다가 진천의 어느 부잣집의 죽은지 얼마 안된 아들의 몸으로 들어갔다. 다시 살아난 그는 진천의 아내와 함께 용인군 묘봉리의 아내도 거느려 각각 자식을 삼형제씩 두게 되었는데 마침내 천수를 다한 그가 죽자 용인과 진천의 아들 사이에서 혼백다툼이 생기게 되었다. 이 송사를 맡은 진천군수는 그가 살아서는 진천에 있었으니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라는 판결을 내려 결국 용인의 아들들이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용인은 고려조에 와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쳐 용인현(龍仁縣)으로 하였다. 용구(龍駒)는 고려때 신갈에 설치되었던 용흥역(龍興驛)과 구성현(駒城縣)의 앞 글자를 딴 합성지명(合成地名)이다. 구성(駒城)은 태조 왕건(王建)의 고구려 계승책과도 관련이 있다. 처인(處仁)이라는 명칭은 고려 현종때부터 불려졌는데 고려때 군창(軍倉)이 있었다.

용인은 진산(鎭山)인 석성산(石城山), 정수산 등 열 서너개의 푸른 산과 금학천(金鶴川), 탄천 등 다섯 개의 맑은 강을 비롯하여 산간계곡에 작은 하천이 잘 발달한 곳이다. 산세가 급하지 않고 적당히 낮아 여러 곳에 아름다운 분지를 이루므로 예로부터 풍수요건을 갖춘 명당으로 손꼽혀 왔다. 고려말 임 향한 일편단심의 지조굳은 선비 정몽주(鄭夢周)는 모현면 능원리에, 한말(韓末)의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은 구성면 마북리의 나지막한 산중턱에 묘지가 있다. 이 밖에도 남이 장군, 이범석, 김대건 신부 등 무려 39분의 역사적 인물의 묘소가 있다.
용인 땅은 죽은이의 안식처이고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용인에 한국민속촌, 에버랜드, 16개의 유명 골프장과 리조트, 7개의 대학 캠퍼스, 13개의 기업체 연수원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복지(福地)로 알려진 용인이 국토의 난개발로 흠집이 나고 있지만 용인은 사람살기에 편안한 곳이어서 사자(死者)에게는 편안한 영면의 장소요, 산 자에게는 좋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나보다.

/한국감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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