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는 은행 중 독자생존 능력이 없는 곳을 금융지주회사로 묶기로 함에 따라 은행들의 절박한 생존게임이 본격화됐다.
정부 방침에 따를 경우 아직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은행이라도 부실이 크고 생존이 의심스러울 경우 공적자금 투입 후 지주회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공적자금 투입은행인 한빛·조흥·외환은행을 지주회사로 묶으려던 기존의 구조조정 구도는 달라지게 된다. 이들 대형 은행뿐 아니라 일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들을 모두 지주회사의 우산 아래 집합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반대로 한빛·조흥·외환은행 중에서도 독자생존력을 주장하면서 지주회사 편입에서 벗어나려는 곳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차 구조조정의 지도가 바뀐다=지주회사 통합대상에서 외환은행이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 게 가장 큰 변화다. 12일 노·정 합의문에 따르면 9월말까지 경영정상화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은행은 자체 정상화가 어려운 은행과 ‘공적자금이 직접 투입된 은행’이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2,3대 주주인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증자에 참여하는방식으로 정부의 우회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정상화계획 제출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또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단독 대주주여서 정부에서 지주회사 편입을 주도하는데 한계가 있다. 한빛·조흥은행 중에서도 조흥은행의 경우 6월말 현재 BIS 비율을 10% 안팎으로 유지했고,추가된 잠재손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나름대도 독자생존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부실이 많은 서울은행과 평화은행이 변수. 이 중 서울은행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영정상화를 꾀하되 지주회사에 넣기 보다는 국외에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BIS 비율이 4%선인 평화은행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 입장이 확실지 않다.
◇우량은행 합병완급 조절한다=국민·주택·신한·하나·한미 등 우량은행들은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몸집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장의 ‘짝짓기’ 압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직·간접적인 합병 압박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로 묶이는 은행들이 단시일안에 합병을 단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우량은행에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호재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기존 방침대로 자체 금융그룹화를 통한 독자생존 방침을 확고히 굳힐 것으로 보인다. 전산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은 하나·한미은행도 여유를 갖고 합병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최대의 합병주체인 국민·주택은행은 지주회사로 묶여 탄생하는 거대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합병파트너를 찾는 작업을 서두를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은행 다급해졌다=외환은행과 달리 일부 지방은행들은 지주회사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BIS 비율이 8%에 미달하는 지방은행은 광주·제주은행 등이다. 이 중 제주은행은 중앙종금과 합병하는 쪽으로 활로를 찾았지만 아직 정보의 최종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다. 조흥은행과의 합병설이 돌았던 광주은행은 정부가 강제합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경영정상화계획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지주회사 산하로 들어갈 여지도 있다.
<정부·금융노조 합의문 전문>
1.정부는 금융정책 운용방향을 국무총리 훈령 또는 국무회의 결정사항으로 공표,시행. 1)은행의 경영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는 법령상의 규제는 이른 시일내에 일소. 2)은행경영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보장하고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지도록 보장. 3)정부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은 문서 등 투명하고 명백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시행.
2.1)2단계 금융개혁은 시장원리에 따라 추진. 2)정부는 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 인프라스트럭처 개발,후순위채 매입 등 제도적 지원장치를 마련. 3)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은행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추진. 4)공적자금 투입은행 등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은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5)6월말 기준 자체 정상화가 어렵거나 공적자금이 직접 투입된 은행은 9월말까지 경영정상화계획을 제출하고 경영평가위원회가 그 적정성을 평가한 결과에 따라 정상화 추진.6)중립적이고 객관적 인사인 위원장 포함 8명 이내로 독립적 위원회 구성(정부 영향력 배제).자기책임하에 부실채권 정리와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면 자체 계획에 따라 정상화 유도.그렇지 못한 은행들은 객관적 평가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실을 먼저 정리한 후 철저한 자구노력과 책임분담을 전제로 BIS 10%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공적자금을 충분히 투입하고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방식 등을 통하여 정상화를 추진.
3.향후 금융개혁중 정부주도의 강제합병은 없고 조직 및 인원감축 등은 노사단체협약 존중.
4.예금부분보장제도는 예정대로 시행하되 제도 시행 전에 금융개혁의 마무리 과정과 금융시장의 안정여부,금융기관간 자금이동과 편재 내지 왜곡 가능성 등을 검토.
5.정부가 은행에 지급해야 될 책임이 이미 발생한 예금보험공사 차입금 등은 이른 시일내에 지급하되,유동성이 긴급히 필요한 은행은 우선 지급하고 그 외에는 충분한 기회비용 보상.정부가 지급해야 할 법적 책임이 있는 러시아 경협차관 등은 조속히 처리방침 결정.
/ kyk@fnnews.com 김영권 이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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