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서울 국제금융포럼]동아시아개발은행…'파이낸셜 코리아'의 핵심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3 04:47

수정 2014.11.07 13:53


▲한문수=오늘 금융포럼에서 한국금융의 체질강화와 관련해 시의적절한 제안을 해 주신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서구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동아시아의 진열대 역할을 바라고 있습니다.이것은 다시 말하면 서울을 동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되도록 한다는 장기 계획입니다.한국이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서울을 동아시아의 금융중심지로 부상시킨다는 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루트=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제 투자가들이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그렇게 되어야만 자본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미국식 제도를 그대로 들여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전한 경영방식의 도입은 꼭 필요합니다.한국은 투자가들의 매력을 끌 수 있는 기반을 갖췄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보완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관련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한문수=한국으로 서구자본을 끌어들이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스=얼마전 밀큰 연구소는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이자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 워터 하우스와 공동연구를 수행했습니다.이 공동연구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현재 자금흐름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며,그 원인이 한국 경제의 불투명성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국의 회계기준,정부 정책 기준이 투명하게 바뀌어야 자금도 제대로 흐를 것으로 봅니다.

▲스트라스하임=시장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일어나야 합니다.그렇지 못할 경우 외국 자본은 철수하게 됩니다.일본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세계 유수의 증권회사들이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이 지역에 영업본부를 설치했지만 현재 대부분 철수한 상태입니다.아직 철수하지 않은 메릴린치,골드만 삭스 등의 일본 영업점은 일본만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외국 금융회사의 주목을 끌만한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홍콩보다 싼 비용으로 남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국제적 금융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서울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영업비용이 적게 먹힙니다.여기에다 공항이 하나 더 생긴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서울은 마치 유럽의 프랑크푸르트처럼 아시아 지역 제2의 금융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문수=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금 한반도에는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이런 분위기를 살려 남북한 간에 경제협력 사업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차제에 한국 일각에서는 일본,러시아 동부,중국 동북부 지역을 포괄해 좀더 큰 차원의 경제협력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이런 논의가 현실화한다면 시베리아 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국내에 들여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트라스하임=러시아 동부에 그다지 대단한 매력이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러시아 동부는 산업기반이 취약합니다.중국 동북부도 마찬가지입니다.경제적 가치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에는 지금 마치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려 10배에 달하는 남북한 소득격차입니다.결국 통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루트=저는 견해가 다릅니다. 러시아 동부에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중국 동북부에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습니다.한국에는 고급인력이 있고 이들 지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습니다.남북간의 긴장이라는 정치적 장애물이 걷히기만 하면 미국,캐나다,유럽 지역에서 자본이 몰려올 겁니다.그렇게 되면 동아시아개발은행(EADB)이 더 매력적이 되는 것이지요.

▲조희준=남북한은 여전히 휴전상태에 있으며 남북한 간에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도 많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분위기에 힘입어 한반도 긴장이 완화된다면 방위비 부담도 줄어들 것은 분명합니다. 여러 득실을 감안해야겠지만 결국 통일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용=국내기업 가운데 현재 북한과 가장 활발히 교류중인 곳은 현대그룹입니다.그런데 얼마전 현대가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현대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남북 경협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지도 아직은 의문입니다.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개발은행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바스=만약 한국이 동아시아개발은행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루트=동아시아개발은행은 사실상 일본 은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본의 참여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입니다.이 은행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합니다.또 기존 개발은행과 달리 상호협력적인 체제가 돼야 합니다.미국도 동아시아개발은행에 관심이 많습니다.

새 개발은행이 생긴다면 돈을 꿔가는 국가는 주로 중국,북한,러시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돈을 꿔주는 국가는 일본,미국,캐나다,유럽이 될 것입니다. 특수한 위치에 있는 한국은 두 부류 모두에 해당할 겁니다.

▲박상용=아시아개발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200억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서구자본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분참여를 하려 할까요?

▲스트라스하임=과연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들이 이런 개발은행에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원을 둘러싸고 정치적 잡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문수=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그러나 동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개발이 덜된 지역으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일본,한국은 이 지역을 개발할 인적자본을 갖추고 있습니다.돈은 이익이 생기는 곳이며 그곳이 어디든 찾아들게 마련입니다.아시아개발은행이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것은 마르코스 정부가 건물과 대지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아시아개발은행은 동북아시아의 상황에는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동남아시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스트라스하임=저도 새 개발은행의 설립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합니다.그러나 설립과 동시에 북한의 인프라스트럭처 투자에 관심을 쏟다 보면 한국 자체 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있습니다.또 현 상태로 통일이 되면 한국경제는 부산 인구에 상당하는 인구를 먹여살려야 합니다.(해외의 논자들 가운데는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북한의 빈민 약 400만명이 서울 주변의 수도권에 밀려들며,이는 서울 주변에 부산만한 규모의 도시 하나가 새로 생기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편집자) 비용이 많이 들지요.이런 면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은 유럽 제1의 경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사정이 그러한데도 독일 통일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한반도가 통일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일단 오래 걸릴 것으로 봅니다.미국 투자가들은 대체로 한국에 대해 낙관적입니다.장래의 투자여건은 일본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루트=동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은 지역 긴장을 완화시킬 것으로 봅니다.

▲한문수=스트라스하임 사장도 1990년에 동아시아지역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트라스하임=돈은 이익을 좇아 움직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한국과 일본에서는 보내고 싶은 곳에 돈을 보내죠.과거에 한국의 은행들이 잘못된 관행속에서 재벌에 돈을 지원했던 것처럼 자원배분이 왜곡됩니다.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됐기도 하고요.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문수=과거에 그랬던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지금 한국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이 이윤추구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최근 증권시장에서 그런 면이 보입니다.연간 매출이 300억달러인 삼성전자 주가는 연간 100억달러 매출을 올리는 현대전자 주가의 50배 수준입니다.이 차이는 현대가 영업이익을 주주에게 나누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국내외 투자가들의 신뢰을 얻지 못하는 기업의 주가는 낮을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힘’이 나타난 사례라고 봅니다.

▲박상용=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에 유입되는 자금이 단기성 자금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외국인들은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은 현재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한국의 잠재적 가치를 보고 투자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아직 구조조정이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한문수=물론 금융위기를 1∼2년 내에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한국에 제2의 금융위기가 오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한국 경제에는 아직도 풀어야할 문제가 남아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구조조정이 미진하다며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많이 있습니다만 구조조정은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고통스런 구조조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이런 노력으로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과정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 등에서 경제위기 극복의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외국인 자금이 계속 유입되는 것은 아직도 이익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아직 개혁이 덜 끝났다고 해서 제2의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다시 말하지만 제2의 금융위기는 없습니다.

▲스트라스하임=위기냐 고질적인 병이냐 하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한국 정부는 위기 극복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이제는 고질적인 병을 고치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긴장을 유지하면서 구조조정을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문수=한국정부는 개혁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금융위기를 겪은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느냐”는 식의 저항이 적지 않습니다.모두들,심지어 대통령까지도 IMF를 졸업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개혁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외국 투자가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잠재력이 많은 국가입니다.

▲박상용=여러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것은,한국 경제사상 처음으로 시장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우리는 이러한 최근의 현상을 잘 살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문수=장시간 좋은 말씀 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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