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그린단상] 골프도 올림픽 종목이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7 04:48

수정 2014.11.07 13:50


세계 젊은이들이 한곳에 모여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스포츠 중에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올림픽과 월드컵이다.횟수를 거듭할수록 올림픽에는 현대스포츠가 거의 다 채택되어 모든 아마추어 경기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하던 올림픽도 차츰차츰 상업화와 정치논리에 오염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단일 경기로는 월드컵을 능가하는 스포츠는 없다.

특히 요즈음 스포츠는 기업의 이미지와 생산품을 동시에 연관시켜 구매충동을 유발하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또 하나 우리들의 깊은 관심을 끌어내는 골프가 있다.골프도 알고 보면 근대올림픽의 당당한 한 종목이었다.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실종된 지 오래다.최근에 와서 다시 채택문제를 놓고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으로 골프가 올림픽에 정식으로 참가했던 것은 1900년 7월 14일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제2회 때부터다.올림픽 종목으로는 대선배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제3회 때에도 참가했다.그후에는 무슨 이유인지 한동안 참가하지 않다가 1936년 베를린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가 골프종목으로는 제3회가 되며 올림픽에서는 마지막이 되었다.이상하게도 제2회 올림픽 골프대회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한다.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제3회 세인트루이스대회는 자료의 대부분이 완벽하게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경기는 9월19일부터 6일간 세인트루이스 교외에 있는 글렌에코CC에서 치러졌다.출전자격은 제한이 없고 자신이 소속한 클럽을 통해 5달러의 참가비를 내고 신청하면 되었다.경기방식은 36홀 스트로크플레이 예선과 예선통과 32명이 매치플레이로 승자를 가렸다.

올림픽에서 최초의 골프 금메달은 캐나다 출신의 당시 나이 46세의 조지 라이언이 차지했다.이 메달은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로열 캐나디언 골프협회 박물관에 지금도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제3회 경기는 우리가 88올림픽을 유치한 독일 남부의 조그마한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열렸다.이때에는 개인전이 채택되어 각국에서 대표 2명씩 출전하여 72홀의 스트로크플레이로 순위를 결정하였다.

이 경기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의 야심에 찬 독일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대회였다.이 당시만 해도 독일 선수들도 골프를 잘 했던 모양이다.골프경기에도 은제 예술품의 우승트로피가 특별 준비되었다.히틀러는 경기 3일째 독일팀이 선두에 서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그는 독일 조국을 위해 싸운 두 선수에게 직접 우승트로피를 수여하려고 아침 일찍 급히 특별열차를 준비했다고 한다.바덴바덴에 거의 도착할 무렵 영국의 역전 우승이 확실시된다는 뉴스를 듣고 그대로 열차의 방향을 되돌려 베를린으로 갔다고 한다.

이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서 골프는 실종되고 말았다.

/장홍열 hychang@ksbc.or.kr(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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