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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꽁트-김영두] 내취미는 골프와 남 흉보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19 04:48

수정 2014.11.07 13:48


내 취미는 골프,그리고 남의 등뒤에서 흉보기이다.내 친구들은 내 앞에서는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화장실에 간 사람을 놓고 내가 흉을 보기 때문이다.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므로 나도 안 간다.마려운 오줌을 꾹 참는다.두 다리가 저절로 꼬이고 식은 땀이 날 무렵,나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친구를 하나 혹은 둘쯤 끌고 화장실에 간다.그래야만 내 흉을 볼 시간이 반이나 3분의 1로 줄을 테니까.

나는 라운드를 하면서도 남의 흠을 못 잡아내서 안달을 한다.흠만 꼬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장되게 흉내까지 내면서 흉을 본다.

연습장에 딱 두 번 가봤다는 남자를 필드에서 만난 적이 있다.피차에 일진이 안 좋았는지 그 남자와 나는 앞조와 뒷조로서 조우했다.절친한 친구가 부친의 사망 부고를 받고 시골로 내려가면서 자신의 자리를 대신 메워줄 것을 읍소했다고 했다.자다가 불려나와 머리를 얹게 된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는 동반자가 쥐어주는 7번 아이언을 열 번쯤 휘두르다가 간신히 티 위의 공을 맞췄다.그 다음이 문제였다.야구선수들은 투수가 던진 공을 때리고 난 뒤에 방망이는 버리고 달린다.왕년의 야구선수였다는 이 남자는 채를 집어던지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나는 그래도 교양있는 숙녀답게 혀를 물고 웃음을 눌렀다.다음 홀에서는 좀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이 가엾은 사나이는 동반자의 스윙을 지켜보더니 그대로 따라 한답시고 오른쪽 다리를 들고 야구선수들의 학다리 타법같은 피니쉬 폼을 만드는 것이었다.그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얼마나 어금니를 앙물고 웃음을 참았는지 잇몸이 얼얼해져서 돌아왔다.그리고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의 학다리 타법을 재연하느라 내 스윙폼까지 망가져버렸었다.

나하고 가끔 라운드를 하는 신부님이 계시다.그 신부님과의 라운드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첫째는 싱글 골퍼와의 라운드니 그 즐거움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둘째는 신부님의 스윙에 대해 흉을 보는 즐거움이다.나는 신부님과 공을 치면서 매번 감탄을 한다.어떻게 저런 체격과 저런 스윙으로 이븐파라는 기록을 넘보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신부님은 작달막한 키에 배가 나왔다.팔다리가 아주 짧다.팅그라운드에 올라가면 양다리를 벌릴 수 있는 만큼 벌리고 선다.신부님의 사전에는 절대로 몸통회전이란 없다.왼쪽 팔로 오른쪽 어깨를 휘감았다가 한순간에 뿌려줌으로써 샷을 끝낸다.신부님 친구들도 꼴 베러 나온 농부가 지게 작대기 휘두르는 꼴이라고 놀린다.그래도 장타상은 독식을 한다.라운드 때마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동반자들과 신부님의 스윙을 도마에 얹어놓고 갑론을박한다.내가 흉내를 내면 동반자들은 포복절도를 한다.그러나 라운드가 끝나면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한다.

“신부님,제가 신부님의 흉을 봤습니다.죽어 마땅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봤는지 말씀하세요. 그래야 대죄인지 소죄인지 가르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신부님 폼은 완전 개폼이잖아요. 뒤에서 흉내를 내면서 흉봤습니다.”

“교양있는 분이 그런 상스런 말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뭐라고 해요? 하느님의 비호가 없으면 도저히 보기플레이도 못할 폼인데요.” “특이한 폼이라고 해야죠.”

매번 고백성사를 하면서도 남을 흉보는 악습은 지옥에 가기 전까지는 교정이 안될 것 같다.

/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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