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조주청의 지구촌 골프라운드]비빔밥 메뉴에 한글 안내문까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25 04:50

수정 2014.11.07 13:42


골프에 미친 사람이 어디 한 둘 이랴마는 나도 단단히 미친 사람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밤잠 3시간,낮잠 1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책상에 쪼그리고 앉아 한달 여행 동안 메워줘야 할 원고 만드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스피 항공 이코노미클래스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속에서 늘어지게 자야지 하던 생각은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었다.비행기 속은 입추의 여지없는 도떼기 시장,화장실 가는 승객,담배 피우러 가는 승객이 눈만 감으면 내 무릎을 넘나드니 말이다.

한숨도 못 자고 26시간만에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내리니 동이 트는 새벽이다.어질어질한 발걸음으로 입국 심사대를 나오니 브라질 한인회장을 하고 있는 학교 1년 후배 박종기 사장이 저만치서 활짝 웃으며 손을 치켜든다.

“지금 자버리면 시차 극복을 못해요.”

박사장 차를 타고 상파울루 시내를 지나며 일본 초밥집에서 김밥과 마실 것을 사서 차 속에서 아침을 때우고 도착한 곳은 골프장이다.

사람의 몸이란 희한한 것이 하늘은 노랗고 코에서는 단내가 나고 다리는 무릎 관절이 빠질 것처럼 휘청거리던 게 언제 그랬더냐는 듯,골프장에 발을 들여놓자 그만 쌩쌩해지는 것이다.

상파울루 교외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Lake Woods CC),아침 안개가 무대 위의 드라이아이스처럼 낮게 깔리고 숲을 뚫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이슬방울은 보석처럼 빛나고 이름 모를 산새들은 목청을 뽑아 노래부르고 그리고 가슴 쿵쿵 뛰게 하는 지구 반대편 티박스가 나를 기다린다.짝!동두천토미엄마 히프 때리는 경쾌한 타구음을 남기고 백구는 훨훨 날아간다.

공은 어찌 그리도 잘 맞나.그 잘 나던 슬라이스도 자취를 감췄다.18홀을 돌고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 들어오려니 문짝에 우리말로 이런 글귀가 붙었다.

“공 잘 친다 자랑말고 매너 좋다 칭찬 받자.”

메뉴엔 설렁탕,비빔밥,불고기백반. 알고 보니 이 골프장 주인은 일본사람이요, 손님은 온통 한국교민들이다. 얼얼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비빔밥을 먹고 나서 “지금 벌건 대낮에 박사장 집에 가면 뭣하노?”

이 떠돌이의 제안에 박사장도 기다렸다는 듯이 좋고 말고다.또 한바퀴 시작인 것이다. 골프에 미치기로 치면 브라질 박사장은 어떻고!

두번째 라운딩은 아쉽게도 날이 어두워져 나인홀로 끝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박종기사장 왈 “15년 동안 브라질 살면서 한국에서 오는 사람 수없이 많이 봤지만 이렇게 쌩쌩한 사람 첨이네요.”

뿐인가 어디,가자!한잔 제끼러!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박사장 집에서 하룻밤 늘어지게 자고 나니 시차가 말끔히 가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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