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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트-김영두]애드벌룬 좀 치워주세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26 04:50

수정 2014.11.07 13:41


하늘에는 솜같은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구름은 전위예술가의 퍼포먼스처럼 천천히 형태를 바꾸며 파란 캔버스를 누비고 있다. 그린에도 한 점 구름의 그림자가 내려와 있다.

“좀 치울 수 없을까?”
나와 다른 동반자들은 진작에 퍼팅선상에서 멀찍이 피해 있던 중이었는데, 공 뒤쪽에 쭈그려 앉아서 그린의 기울기를 목측하던 그녀가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아무 것도 치울게 없는데요.”
캐디의 대답에 주위에 방해물이 없음을 안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 보더니 그린을 얼룩덜룩하게 물들이고 있는 구름의 그림자 때문에 신경이 거슬려서 퍼팅을 못하겠다고 했다. 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지체하면 벌타를 먹느냐고도 물었다.
여태껏의 그녀는 ‘소음’에만 유독 강파르게 굴었다.

그녀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동반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물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도 거슬려하고, 장갑을 벗는 소리도 못 참았다. 심지어는 새소리마저 그쳐야 공을 치는 것이다. 오직 완벽한 침묵만을 원하는 것이다. 뒤통수에도 귀가 하나 더 달린 듯이 까탈을 피웠다. 그녀는 백건우나 정경화나 필하모니의 음악회는 식음을 전폐하고 다 쫓아다니면서 생음악을 연주하는 라이브카페는 죽어도 안간다.

“귀가 괴로워서 그래.”

음정박자 뿐만 아니라 음색도 곱지 않은 소리를 어떻게 돈을 내며 들어주냐는 것이다.

“차라리 음반 틀어주는 델 가자. 오디오 시설이 잘되어있음 더 좋고.”

남보다 청각이 예민하고 여린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가지고 싶어하는 물건은 음질과 음색이 좋은 오디오세트다.

그녀가 토끼처럼 민감한 귀를 가졌다고 해서 골프라는 운동을 즐기는데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지는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녀의 까다로운 귀를 다스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었다. 워낙 예민하게 동반자를 들볶아서 웬만한 사람은 한번의 라운드로 그녀와의 골프인연을 포기했다. 그녀가 골프를 하자고 전화를 해오면 나도 거절을 했었다. “안 쳐. 너하고 공칠 때면 웃지도 못하고, 옆에서 물도 못마시잖아.”

남들은 그런 심한 말을 못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내가 왜 그녀를 피하는지 직접 대고 얘기했다.

“미안 해. 그렇게 타고난 걸 어떻하니. 그래서 요즘엔 난 귀마개를 해. 좀 덜 들으려고.”

동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귀마개까지 한다는 데야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귀마개를 한 그녀와 동행을 했는데, 청각을 막으니까 시각이 예민하게 열리는 모양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 홀에서 일어났다.


전 홀에서 더블보기를 해서 꼴찌로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간 그녀가 하늘에 대고 손가락질했다.

“저기 하늘에 떠있는 애드벌룬 말야. 저게 바람에 흔들리니까 여기 그림자가 어룽대잖아. 저거 좀 치울 수 없을까?”

참내, 프로골퍼 콜린 몽고메리가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의 그림자가 방해가 된다고, 치워달라고 했다던 일화가 거짓이 아닌가 보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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