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불안 해소의 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7.30 04:51

수정 2014.11.07 13:37


지난주 불거져나온 현대 건설의 유동성 부족사태는 정책당국의 진화 노력과 은행권의 채권만기 연장 등으로 일단 파국은 면한 것 같다. 그러나 금융시장 불안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다.

현대 그룹의 자금난은 이미 지난 4월 현대투신, 그리고 5월의 현대건설의 유동성 부족에 이어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현대사태의 본질은 현대 자체의 자금사정보다 시장의 신뢰 상실에 따른 심리적 불안 때문이라고 본다. 당초 시장 불안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유동성 문제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금융불안의 원인은 역시 부실기업, 부실금융기관 그리고 정부의 정책부실이 시장의 신뢰 상실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금융시장은 끊임없는 금융불안 및 신용경색으로 이어져왔다.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부실은행의 퇴출, 합병 그리고 종금사·투신사의 부실 등에서 시작된 금융파동이 대우사태, 11월 금융 대란설 등으로 이어졌다. 금년 들어서도 대기업, 중견기업의 금융위기, 금융노조의 총파업 그리고 또 다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등 끝없이 금융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계속되는 금융시장 불안과 신용경색을 모면하고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들을 구제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 정부의 응급조치식 처방이 금융불안 조장

당초에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은행들이 도산할 위험에 빠지자 정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예금 보험을 무제한 확대하고 6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투신사들의 부실을 구재하기 위해서 채권 시장 안정기금, 하이일드펀드 등 신상품 도입 그리고 또 다시 채권형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년여 동안 물가 불안과 경상수지 악화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통화량을 늘려왔다. 이들은 모두 금융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금융 불안을 해소했다기 보다 오히려 연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정부의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엄청난 금융위기가 재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위기가 재발되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 만큼 공적자금을 부담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와 같은 땜질식 처방을 언제까지 계속할지 알 수 없다. 조만간 금융불안이 끝날 것 같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여러가지 응급조치를 쓰면 쓸수록 금융불안도 더욱 빈발하는 것 같다. 이제 웬만한 조치에는 금융불안이 치유되지 않고 더욱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실금융기관의 구제를 위해서 공적자금도 계속 투입해야 할 것이다. 채권형펀드도 10조원으로 모자라서 추가로 조성해야 할 것 같다. 예금보험 한도도 늘리자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현대사태가 발생하자 정부는 시장참여자들의 이기주의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 공멸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문제를 시장의 탓으로 돌린다. 금융기관들이 알아서 현대의 자금난을 메워주라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발전을 과거 어느 때 보다 강조해온 정부가 그동안 해온 것이 오히려 시장기능을 불신하고 시장의 힘을 억제해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 정책 평가위원회도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임기응변식, 구제 위주의 구조조정작업이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부실금융기관의 퇴출이 지연될 경우 해당 기관의 영업기반 악화와 여타 금융기관 및 기업의 부실심화로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우사태 이후 정부는 시장안정을 위해서 부실금융 기관과 부실기업 살리기에만 급급했다.

▲부실금융기관과 기업은 반드시 퇴출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대해서도 채권단 및 부실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정책당국의 감독소홀로 성과가 미흡했다. 따라서 정부가 수많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 시장의 신뢰를 얻기는 커녕 신용 경색을 초래하고 위기를 증폭시켜왔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응급조치를 남발하기 보다 시장 원리에 입각해서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회생가능한 금융기관과 기업에만 추가지원을 해서 시장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 금융시장 불안의 근본원인이 시장의 신뢰상실이기 때문에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단기적인 묘책은 없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기업,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은 반드시 퇴출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시장의 힘이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촉진하도록 하며 정부가 이를 억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원칙에 따라서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일관성 있고 확실하게 추진할 때 시장의 신뢰는 스스로 회복될 것이다. 어차피 정부는 더 이상 쓸만한 정책 수단도 별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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