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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야기] '큰 인물'배출한 영암 월출산


국립공원 월출산(月出山)은 곡창 호남의 나주 평야 한가운데 한 덩이 거대한 수석처럼 솟아오른 영산(靈山)이다. ‘달이 나오는 뫼’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먼 옛날 월출산에는 세 개의 움직이는 큰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 때문에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중국에까지 퍼졌다. 이를 겁내고 시기한 중국인들이 찾아와 이 바위 3개를 모두 산 밑으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본래 자리를 찾아 올라가는 고로 신령한 바위가 있는 고을이란 뜻에서 영암(靈岩)이라 했다는 것이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성기동(聖起洞,聖基洞)혹은 성지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왕인 박사가 월출산 주지봉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뜻에서 성기라 했다. 그 옆으로 흐르는 냇물과 샘터를 성천(聖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왕인의 탄생지인 성기동 생가 터에는 유허비가 있고 그의 사당인 왕인묘(王仁廟)가 세워졌다. 그가 학문을 연구하던 책굴(冊窟)과 문산재(文山齊),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양사재(養士齊),왜국으로 떠난 배 터로 알려진 상대포(上臺浦),왕인 박사의 석상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상대포 항구는 바다를 막아 농토가 되었다.

왕인은 일본 고대 문화의 개화기인 아스카(飛鳥)와 나라(奈良)문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사카에는 왕인 묘소와 왕인 공원까지 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신라 말기 때 왕인이 탄생,성장한 옛 집터에 낭주 최씨 일가가 살았는데 집 뜰에 한자 남짓 되는 오이열매가 맺혔다. 이 집 딸이 이 오이를 따먹고는 임신이 되었다. 처녀의 몸으로 사내아이를 낳자 부끄러움에 못 이겨 아이를 대숲에 몰래 내다 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비둘기와 솔개들이 날개로 덮어 보호하므로 다시 데려와 길렀다. 이 아이가 바로 뒷날의 도선국사(827∼898)라는 것. 구림리(鳩林里)라는 지명도 이렇게 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도선(道詵)은 「도선비기」를 썼으며 태조 왕건의 고려건국을 예언했다. 풍수지리 도참사상을 전하여 조선시대까지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월출산은 백제사람들의 천불산(千佛山)이요,불국정토(佛國淨土)였다. 당시 아흔 아홉 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국보 144호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월출산 도갑사(道岬寺)는 도선국사가 입적한 뒤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다.

세 개의 움직이는 큰 바위 중 하나의 바위는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는데 월출산은 역사적으로 큰 인물인 왕인 박사와 도선국사 두 성인을 배출했으니 그렇다면 아직 남은 한 사람의 큰 인물은 언제 이 산에서 태어날까.

/한국감정원장 강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