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fn기획- 돈흐름이 달라진다]안전·고수익 찾아 수십조 대이동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8.13 04:55

수정 2014.11.07 13:21


시중에 넘칠 듯이 고여있는 뭉칫돈들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움직이면서 곳곳에서 치열한 국지전을 펼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고금리 특판상품에 거액의 예금이 몰려 단기 부동화하거나 아예 은행 투신 보험사의 비과세 장기상품에 거액 자금이 잠수하는 등 자금 운용의 양극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자금이동이 거의 없는 가운데 극소수 인기 주상복합아파트나 고급 임대아파트,인기지역 재건축·재개발아파트 등에 단타성 뭉칫돈들이 넘나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 연초까지는 폭발적인 증시활황과 벤처붐을 타고 코스닥-벤처-공모주청약 쪽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큰손’들이 연초이후 주로 은행권에서 탐색전을 벌이다 최근들어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중 자금의 투자시장간 이동성 증대는 ▲불확실한 증시 및 부동산시장 전망 ▲연내 금융권 2차 구조조정 ▲내년도 금융소득 종합과세 부활 ▲예금보호한도 축소 등과 맞물려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올들어 7월말까지 시중에 풀린 총통화(M2)는 평균잔액(평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4조5000억원이 늘었다. 돈흐름의 속도인 통화승수가 18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줄잡아 81조원의 돈이 시장에 더 풀렸다고 할 수 있다.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이젠 투자처나 도피처를 찾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시중에 돈이 많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권 자금이동의 양대 물줄기는 ▲투신-종금-금고 등 2금융권에서 1금융권인 은행으로 ▲은행권에서는 비우량은행에서 우량은행으로 돈이 흐른다는 것. 금융구조조정과 내년도 예금보호한도 축소를 의식해 일단 안전한 곳으로 돈을 옮겨 두기 위한 움직임이다. 올들어 7월말까지 은행 정기예금에는 45조5000억원이 새로 유입된 반면 같은 기간 투신사는 40조2000억원,종금사는 3조7000억원,신용금고는 1조1000억원(1∼6월)씩 각각 수탁액이 줄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예금만기를 일단 연말 이내로 단축하는 경우와 ▲장기자금은 우량은행에,일시적인 단기자금은 이자를 더 주는 비우량은행이나 신용금고에 넣는 새로운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7월 한달동안 저축성예금에 7275억원이 유입됐고 이중 78.0%인 5730억원이 만기 1년 이상짜리 장기예금이었다. 반면 한빛은행은 지난달 정기예금 증가액이 국민은행의 절반 이하인 3071억원에 그쳤고 이중 1년 이상짜리는 61.0%인 1885억원이었다. 외환은행은 지난달 정기예금이 오히려 157억원 줄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자를 조금만 더 주어도 순식간에 돈이 몰리는 금리민감도도 매우 높아졌다. 열린상호신용금고가 지난 1일부터 11.2%의 확정금리를 내걸고 특판에 들어간 정기예금에는 열흘만에 100억원이 몰렸다. 10.5% 금리를 쳐주는 해동금고의 ‘팔도강산 정기예금’도 지난 1일 시판 이후 10일만에 232억원이 유치됐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한 거액 자산가들의 절세형 저축도 급증하고 있다.시중은행들은 분리과세가 가능한 만기 5년짜리 정기예금 상품을 줄줄이 내놓고 억대 고액저축들을 흡수하고 있다. 또한 보험사들도 이에 가세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상태. 삼성생명은 5년치 보험료를 한꺼번에 받는 일시납 상품으로 지난 6월 한달동안에만 6387억원을 거둬 들였다. 같은 기간 교보생명과 대한생명도 일시납 보험료 수입이 1255억원과 818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일시납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내년에는 보험상품의 비과세기간이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기 때문.

지난달 27일부터 시판한 투신사의 비과세투자신탁에도 이달 10일까지 2주 사이에 4조1500억원이 쇄도했다. 이 덕분에 지난해 7월 대우 사태 이후100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 나갔던 투신사들은 지난달 1년만에 수탁액이 늘었다.

반면 주식시장에서는 돈이 빠지고 있다. 개미군단을 설레게 하던 대세상승의 ‘큰장’이 끝났다는 진단이 우세해지면서 단기고금리예금상품이나 부동상시장쪽을 엿보는 돈이 많아진 것이다. 주식매수 대기자금인 증권사 고객예탁금은 지난 3월10일 12조4600억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5달동안 3조3111억원이 줄어 10일 현재 9조1498억원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쪽은 철저한 국지전이다.
부동산경기가 장기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자 확실한 ‘재료’가 있는 물건에만 매기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분당 백궁역 일대에서 공급된 현대산업개발 등 4개 대형업체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엔 청약신청금이 줄잡아 1조원이 몰렸다.
이와 함께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전망이 좋아진 고급 임대아파트나 수도권 전원부지 등에도 거액의 투자자금이 계속 입질을 하고 있는 상태다.

/ kyk@fnnews.com 김영권 정훈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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