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보험

˝생보사 상장 법에 따라 재검토˝파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8.23 04:58

수정 2014.11.07 13:12


생명보험사 상장문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재검토하겠다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삼성·교보생명 등 당사자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다면 생보사 상장차익은 당연히 주주몫이지 계약자 몫이 아니라며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삼성생명 관계자는“정부가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며 환영했고 교보생명 관계자도 “모처럼 희소식”라고 반겼다. 삼성·교보는 시장친화적인 금감위원장이 있을 때 확실하게 기세를 잡겠다는 태세.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법과 원칙을 몰라서 계약자 몫을 챙겨주려고 했느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생보사 상장의 경우 어차피 실정법에 얽매이기보다는 법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이때문에 지난 1년 이상 지루한 논란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계약자 몫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갈 듯하던 생보사 상장방안이 다시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최대 1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삼성·교보의 막대한 상장차익을 둘러싼 생보업계와 계약자간의 팽팽한 접전이 재연된 것이다.


◇상장차익 누구몫인가=핵심 쟁점은 역시 상장차익의 배분문제. 삼성과 교보생명의 상장후 예상주가를 회사측 주장대로 각각 70만원과 30만원으로 잡을 경우 시가총액은 삼성 14조원(총 주식수 2000만주×70만원),교보 4조1160억원(1372만주×30만원)으로 두 회사를 합쳐 18조1160억원에 이른다. 여기서 두 회사의 액면가(주당 5000원) 총액 1600억여원을 빼더라도 상장 시세차익은 무려 18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다보니 이 엄청난 상장이익을 고스란히 챙기고 싶은 보험사 대주주들과 ‘계’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생보사의 급성장은 주주들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주주 몫을 제한해야 한다는 정부와 학계 일각의 입장이 그동안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근영 위원장의 이번 발언도 바로 상장차익을 주주와 계약자가 서로 나눠야 하는지,나눈다면 어떤방식으로 어떤 비율로 나눌 것인지와 관련된 문제다.

삼성과 교보는 생보사도 법적으로 엄연히 주식회사라며 상장요건을 갖춰 기업공개를 하는 기업의 시세차익은 당연히 주주몫이고 계약자에게 주식을 배분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초지일관 견지하고 있다.

반면 소장파 보험학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국내 생보사들은 연혁적으로 볼 때 92년까지는 사후에 이익을 배당해주는 유배당상품만 판매해 왔으므로 상호회사적 성격이 강하고,지난 40년간에 걸쳐 계약자들의 보험료에 의해 오늘날 수십조원의 자산이 축적된 만큼 당연히 계약자의 몫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양대 생보사 대주주들이 자기돈으로 납입한 초기자본금은 삼성 40억원,교보 5억원(99년 8월기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해 10∼20%씩 받는 배당금 등을 자본에 다시 전입시켜 묶은 것이다. 또 유배당 상품은 보험료를 산출할때 사업위험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반영해 높게 책정하기 때문에 주주와 계약자간에 위험의 공유도 철저하게 이뤄져 왔다.

◇자산재평가차익 및 유가증권 평가익에 대한 배분=자산재평가 차익배분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다. 상장시 주가 산정을 위해 필요한 주당 순자산가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유가증권 등 자산의 재평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산재평가차익에 대해서는 99년3월부터 주주와 계약자 몫을 1.5:8.5로 배분,연말 배당시 반영하고 있지만 문제는 90년 이전까지의 계약자들은 이들 부동산의 가격상승분이나 유가증권의 미실현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배분를 받지 못해 이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이들 과거 계약자에 대한 몫을 공익사업출연기금으로 계상하여 그이익금을 공익사업에 활용토록 했지만 현재 이돈은 회사 또는 대주주명의로 홍보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향후 전망은=금감원은 지난해 8월 ‘생보사 기업공개 추진방안 세미나’에서부터 계약자 권익보호에 중점을 둔 금융연구원안에 입각한 정책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해왔다. 특히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인맥으로 분류되는 해외파 김기홍 부원장보의 성향이 워낙 개혁적이어서 삼성·교보 등 양대 보험사들은 전전긍긍해온 것이 사실.

그러나 지난 8·7개각으로 개혁성향이 강한 이헌재-이용근 라인이 물러나고 상대적으로 시장친화적인 진념-이근영라인이 들어오면서 생보상장 문제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고 이는 이 위원장의 22일 발언으로 현실화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감위가 사기업에 대해 특정인에게 주식배분을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며 일단 계약자에 대한 주식배분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생보사 상장에 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정부안은 아직 없다”는 것. 김기홍 부원장보는 “현재 정부안을 마련중”이라며 “계약자 몫을 안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더라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으로 당초 8월말로 예정됐던 생보사 상장문제는 사실상 시한을 넘기게 됐다.
이 위원장도 “연내 상장이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해를 넘를 공산이 커진 것이다.
더구나 정부가 각계의 뜨거운 논란을 의식해 최종 결론에 대한 결심을 하지 못할 경우 생보사 상장문제는 또 다시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djhwang@fnnews.com 황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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