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은행, 채권 창구판매 기피…정부 준비 소홀로 수익보다 비용 더 들어

이영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05 05:01

수정 2014.11.07 13:01


채권시장 활성화와 선진화를 위해 정부가 지난달말 은행창구에서 회사채 등 채권을 팔 수 있도록 ‘채권전문딜러 지정제’를 도입했으나 사전 준비소홀과 은행측의 기피로 겉돌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회사채를 창구에서 판매할 경우 수익보다 비용이 더 들어간다며 채권판매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뚜렷한 대책이 없는 한 채권 창구판매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전망이다.
◇손 놓은 은행 채권딜러=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8월 22일 마비상태에 빠진 채권시장을 살려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도와준기 위해 한빛 외환 국민 조흥 등 8개 시중은행과 시티 등 5개 외국계 은행을 채권전문딜러 은행으로 선정했다.이에 따라 이들 은행은 회사채 등 채권을 창구에서 마음대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일반인들도 증권사 등 제2금융권이 아닌 은행에서 채권매매를 통해 자산증식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이번 조치는 은행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작품이라며 사실상 채권판매를 기피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의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채권시장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실제로 은행이 채권을 팔려면 시스템 개발이나 인력보강,교육 등 각종 경비가 들어간다.이에 반해 채권매매를 통해 챙길 수 있는 수익은 현재 0.5∼1.0%포인트 수준인 채권 매도금리와 매수금리의 차이 정도다.조흥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에서 채권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산망이나 내부지침,약관,인력보강,통장 등 준비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며 “정부가 은행의 적정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5년전 사장됐던 국공채 판매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투신과 달리 은행은 예금판매가 주력사업이기 때문에 과연 채권판매에 얼마나 은행들이 나설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국민은행 관계자는 “증권사와 달리 은행에 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금고객”이라며 채권 창구판매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특히 은행들은 채권매입 고객이 급전이 필요해 다시 은행측에 환매를 요청할 경우 은행은 수익을 위해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고객들이 보게 되는 손해는 결국 은행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밖에도 은행 관계자들은 높은 리스크와 자금시장 불안정성에 따른 물량확보 문제 등도 은행의 채권판매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올 연말까지 채권 창구판매에 나설 은행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금융당국은 이번 채권전문딜러 지정제는 취약한 국내 채권시장의 선진화 및 활성화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는 입장이다.결국 은행의 수익성은 차후 문제라는 얘기다.금감위 오세정 과장은 “이번 딜러제는 누구나 쉽게 채권시장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건전한 채권시장 조성을 위해 마련한 제도”라고 강조했다.따라서 그는 “채권매매 실적이 부진한 은행은 향후 업무취소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며 은행의 불만에 따른 대책마련은 현재로서는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채권 매매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법제화를 통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ykyi@fnnews.com 이영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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