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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건축물(1)-경기 강화군 송해면 미제루]완성 추구하는 공간 '樓'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06 05:01

수정 2014.11.07 13:01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20여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아! 이쁜 집! 우리,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이글은 15년전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실렸던 피천득씨의 수필 ‘인연’의 한 토막이다.피씨 수필에도 나오 듯이 우리는 ‘그림같은’ 집에서 살기를 꿈꾼다.
방철린 건축가(52·인토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해 경기도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에 지어진 ‘미제루(未濟樓)’는 그림같은 집은 아니지만 지역 여건과 살 사람의 마음 씀씀이까지 세심히 헤아려 지어진 전원주택이다.
준농림지역에 들어선 이 집은 대지 145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연면적이 51�j8평인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다.이집 주인은 모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부부가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 이에 맞게 설계됐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전통집 구조인 ㄷ,ㅁ자형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열린 공간인 ‘누(樓)’를 중심에 뒀다.누는 노출공간으로 지역민들과의 대화의 장 역할을 한다.지역민과 동화하지 않고는 전원주택에 오래살 수 없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미제루는 마을에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그러나 마을을 내려다 본다는 좋지 않은 인식을 고려, 거실을 뒤쪽에 배치하는 세밀함을 보였다.

이곳 양오리는 강화도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7∼8분쯤 차를 몰면 나타나는 조그만 마을이다.미제루가 지어진 곳의 가까운 곳에 묘가 있었다.그만큼 명당 자리라는 것이다.차분하게 안정감을 주는 땅에 바른 방향과 좋은 전망, 적당한 땅 경사, 여기에 나무 숲의 풍요로움은 미제루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집 주인이 미제루를 소유하는 데는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다.비교적 오지인 이곳의 땅을 평당 7만원선에 사고 건축비도 평당 300만원 수준에 지을 수 있었다.

이집의 이름 미제루는 주역의 64괘중 마지막 괘인 ‘미제(未濟)’에서 따왔다.미제는 바로앞 63번째 괘인 ‘기제(旣濟)’가 완성됨을 뜻하는 것의 반대 개념으로 이 세상 삼라만상은 완결·완성으로 끝나지 않고 늘 바뀌고 순환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학문이나 우정은 늘 완성된 것 같으나 부족함이 있어 미완으로 남고 이런 상태에서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생각하는 장소가 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제루’를 세상에 탄생시킨 어머니 역할을 한 건축가 방씨는 “설계를 할 때 한국적인 상황을 항상 머리에 두고 임한다”고 말한다.

방씨는 “우리나라 건축물들은 서양처럼 집의 위용을 자랑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옛부터 자연속에 집을 앉히는 전통적 양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한국적 사고를 바탕으로 설계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옛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다”는 방씨는 “시간이 나면 역사속에서 선조들이 어떻게 집을 짓고 생활했는가를 고민하고 고적답사를 자주 다니며 외곬으로 빠질 우려에 외국에도 자주 나가 견문을 넓힌다”고 털어 놓는다.

방씨는 “항상 노자(老子)의 무위(無爲)사상에 초점을 둔 건축 작품 구상에 전념한다”고 덧붙였다.

미제루는 올해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인 아천건축상을 수상했다.

/ hanuli@fnnews.com 신선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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