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꽁트] 토끼와 거북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06 05:02

수정 2014.11.07 13:00



나는 10여년 동안 골프를 즐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좋아하는 골프를 거의 안하고 있다. 아니 못하고 숨어있다.

나의 은둔에 대해서 갖가지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성형수술이 실패해서 못나온다,빈궁마마 수술을 받았다,소설책이 잘 안 팔려서 아사 직전이다,등등….

내가 필드에 못 나가는 까닭은 골프엘보 때문이다. 재발을 거듭하는 팔꿈치 통증 때문이다.
전문의는 적어도 몇 개월은 연습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죽은 듯이 은둔을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을 사주겠으니 좀 나오라고 했다. 63빌딩의 꼭대기에 있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 5분전에,‘부킹시간 엄수’에 단련된 우리는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너 보여주려고 가지고 왔지. 동반자들 사인도 받았어. 이제 내가 너한테 핸디 줄게.”

엘리베이터가 고속상승을 하고 있는 중에 그녀가 내 코 앞으로 바짝 내민 종이 쪼가리는 바로 어제 날짜의 스코어 카드였다. 그녀가 음식점에 도달할 시간까지도 못 참고 내 앞에서 뽐내고 싶은 기록은 82타였다.

나는 그녀가 만년 초보일 줄만 알았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달리기경주에서 언제나 꼴찌를 독차지했었다. 게다가 잘 넘어지는 재주까지 있어 다른 친구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기는 천사 같은 아이였다. 내가 그녀에게 골프를 권한 데에는 만년초보를 시녀로 데리고 다니면서 심부름도 시켜먹고 돈도 좀 따먹으면서 나를 빛내려는 음흉한 암계 숨어있었다.

“될까? 난 운동은 아둔패기잖아.”

자신의 소질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일 년쯤을 망설이다가 골프채를 잡았다.

“골프는 움직이지 않고 죽어있는 공을 때리는 운동이라 아둔패기라도 할 수 있어.”

나는 감언이설로 꼬드기긴 했지만,운전면허 실기시험을 7번만에 통과하고 시내 운전연수를 50시간이나 받은 다음에야 겨우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운동신경을 무시했었다.

그녀가 골프를 시작한지 3년까지는 내 음모가 차질없이 실현되었다. 내기의 속내평이 어떤지 잘 모르는 그녀는 더하기 빼기 방식으로 핸디를 받았고 곱하기 나누기 식으로 내게 갈취당했다. 나는 이런 축재가 당대에는 영원히 지속하리라 믿었다.


내가 골프 엘보라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녀는 묵묵히 칼을 간 것일까.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토끼를 곁눈질로도 쳐다보지 않고 허위단심 전진한 거북이의 교훈을 본받은 것일까.

“잘했네…. 싱글이 눈앞에 보이네. 그래서 오늘 한턱 쓴단 말이지?”

나는 아낌없이 칭찬했고 격려했다. 그러나 스테이크의 연한 고기를 씹을 수가 없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쓰디쓴 절망 때문에,새까만 후배가 라이벌이 되더니 이제는 추월하여 앞질러 가버리면서 선배에게 던져주는 아득한 절망 때문에…. 나는 목이 메었다.

/김영두(소설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