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금시장 안정의 조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3 05:03

수정 2014.11.07 12:57


중견기업의 자금난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자금지원을 위해 10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담보부채권)를 발행하도록 했지만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들어가지 않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경우 위험부담이 높아 인수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차 구조조정을 앞둔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기피하고 있어 정작 필요한 기업에 돈이 가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끊임없는 불안과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수없이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항상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단기처방에 그쳤을 뿐 근본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정부의 안정대책은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했다기 보다 오히려 연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1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은행과 금융기관이 또 다시 부실해져서 공적자금의 추가적 투입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자금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은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약 2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 기업이다. 이들에 대한 금융기관의 부실 대출이 약 1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부실자산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는 한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대책은 언제나 급한 불끄기에 불과하다. 부실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도 채권단 및 부실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정책당국의 감독 소홀로 기대했던 성과 보다는 기업과 은행의 공동 부실을 초래해 왔다. 이같은 부실기업의 퇴출이 지연되므로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되고 국민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이 부실 금융기관이든 부실기업이든 모두 끌어안지 말고 자생력이 없는 한계기업은 신속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부실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응급조치를 남발하기 보다 시장원리에 입각해서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솎아내고 금융시장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은 반드시 퇴출된다는 원칙이 확립되지 않고는 시장의 안정은 불가능하며 구조조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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