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에너지 절약대책의 虛實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5 05:04

수정 2014.11.07 12:54


정부가 확정 발표한 고유가 대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소비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소비를 줄이는 것 이외에 고유가 파고를 극복할 수 있는 단기적인 대책이 별로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약방안은 어디까지나 확실한,그리고 누구나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중단기적인 대책의 뒷받침이 있을 때에만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원유가 인상분을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상황에서 원유가 폭등때 마다 반복해 온 목욕탕의 주 1회 휴무·네온사인 제한·야간경기 억제 등도 그렇지만 자동차 운행의 제한이 정부가 기대한 만큼 에너지 절약 효과를 낸다 하더라도 이로 인한 일반 국민의 불만을 누적시키는 역기능이 있다. 이러한 불만이 한계점을 넘을 때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음을 우리는 최근 유럽을 휩쓸고 있는 시민 시위에서 보고 있다.

필요 에너지의 98%를 산유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와 민생을 비롯한 국가기반의 중요 요소의 고삐를 그들에게 맡겨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에너지 정책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의 인식이 그렇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 연초부터 제기된 고유가 문제에 대해 낙관론으로 일관하여 적절한 대응의 시기를 놓친 것이 그러하며 한 때 17조6000억원에 달하던 석유사업기금이 특별회계로 바뀐 이후 제대로 적립되지 않아 유가완충자금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과 원유가가 오를 때마다 나왔던 산업구조 개편 역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나 60일분으로 규정된 원유비축을 29일분에 묶어 놓고 있는 것 역시 안일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놓고 허겁지겁 전력요금 체계 개편을 통한 요금인상과 같은 에너지 절약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소비절약이 절체절명의 과제이기는 하지만 정책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부담하지 않아도 될 짐을 국민에게 지우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필요하다면 거시지표의 전면 수정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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