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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회계시장 '빅뱅'](1)구조적 관행과 파장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7 05:04

수정 2014.11.07 12:54


대우 계열사 특별감리는 국내 회계사의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산동회계법인이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고 69명의 회계사가 징계를 당한 이번 ‘9·15사태’의 파장은 단발성이 아니다. 기업의 경영관행이나 회계투명성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회계관행의 문제점과 파장,반발하는 회계법인 등을 시리즈로 짚어본다.<편집자주>

대우특별 감리단이 밝힌 12개 대우계열사들의 분식회계 규모는 무려 22조9000억원. 한해 예산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돈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는 한국 회계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분식회계 불감증=회계의 취약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회계 헌법인 기업회계기준의 낙후성·회계적용의 불투명성·엉터리 회계감사 등 회계시스템의 모든 단계에 부실의 소지가 숨어있다.

우선 부실회계는 기업현장에서 시작된다. 기업 순이익은 경영활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산출되는 가공의 정보일 뿐이다. 재고자산을 부풀리거나 매출채권을 눈가림해 순이익을 분식하는 일은 관행으로 내려져왔다. 또 감가상각방법을 변경해 비용을 조작하고 가공의 해외법인에 돈을 빌려줬다며 계열사 대여금을 재무제표에 올려놓는다.

대우의 경우 BFC라는 해외 유령법인을 통해 자금을 차입,관계회사에 지원하거나 해외법인의 설립·운용 등에 사용했다. 유령회사를 통해 불법운용된 돈만 무려 8조원에 달했다.

97년 부도난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 당시 김선홍 회장은 직접 비서실과 경리부·전산실·자금부 등 핵심부서에 점조직 형태로 분식결산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시스템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감사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은 회계법인이 고객인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 자유수임제도 아래선 질 좋은 감사를 수행하는 회계법인은 고객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적당히 감사하는 회계법인이 인기가 있다.

지난해 청산된 청운회계법인의 주요 고객은 한국강관·대농·기아자동차·한보철강 등 규모는 컸지만 부실소지를 안고 있던 기업들이었다. 나중에 기업과 감사법인이 모두 퇴출의 된서리를 맞았지만 대충대충 감사하는 회계법인에 그렇고 저런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회계의 헌법인 회계기준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98년 IMF와 합의로 회계기준 제정권을 민간기관인 회계연구원으로 넘기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재계의 로비에 의해 회계기준이 누더기처럼 변경됐다.

회계업계는 대우사태의 책임이 이처럼 회계법인 뿐 아니라 기업·당국·은행·정보이용자 등 모든 당사자에 있다며 ‘과연 돌을 던질 죄 없는 자가 어디 있느나”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우사태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회계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편다.

◇소용돌이 속으로=이번 조치로 회계법인 등 관련업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부실감사는 법인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부의 시그널은 그동안 잘못된 회계관행을 뒤흔들 메가톤급 위력을 가졌다.

우선 회계법인의 수임구도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시스템이 불투명한 기업은 감사인을 선정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또 재무제표에 대한 회계법인의 감사의견도 한층 깐깐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정이하 의견을 받은 기업들은 은행대출이나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겨 결국 도태되는 업체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궁극적으로 회계감사상품에 품질의 차별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법인에 대한 소송 러시도 불가피하다. 이번 징계를 대우부실에 대한 회계법인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한 채권단과 소액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봇물을 이룰 태세다. 이처럼 대우 특별감리를 계기로 회계시장과 감사관행 등 전반적인 빅뱅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회계연구원 김일섭 원장은 “회계법인에 대한 징계는 원칙적으로 정부가 아닌 시장이나 사법부에서 내려져야 한다”며 “이번 조치는 그런 면에서 성급하고 가혹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원장은 “하지만 이번 조치로 회계시장이 급변의 급류를 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일벌백계에도 불구,회계투명성이 쉽게 확보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대우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부실·분식 등 불투명성은 비단 회계법인과 일부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의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 jklee@fnnews.com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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