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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회계시장 '빅뱅'](2)기로에 선 회계법인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8 05:05

수정 2014.11.07 12:53


“수백명 직원의 생업이 달려있는 회계법인이 일부 회계사의 부주의나 눈감아주기 등으로 인해 문을 닫는 건 억울합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12개월 영업정지를 받은 산동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부실을 적발하지 못한 책임은 통감하지만 정부의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이번에 영업정지는 피했지만 이런 식의 징계가 계속되면 과연 살아남을 회계법인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감독당국이 결산지침 등을 통해 부실을 방조하거나 눈감아놓고 이제와서 회계법인에만 돌을 던진다며 정부도 대우부실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A회계법인의 파트너는 정부가 회계법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징계위주의 정책이 결국 회계업계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회계사로서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는 고백도 상당수 있었으나 회계사들은 시장이나 사법부가 아닌 정부가 대우와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사실상 판결을 내린 점을 당혹해하고 있다.
회계법인의 책임은 법정에서 가려져야 하는데 정부가 조급하게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징계와 뒤이을 손해배상 소송은 사실상 이중 징계나 다름없다며 이런 중징계는 외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인에 대한 제재로 인해 대우와 관련없는 다른 직원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산동등 회계업계가 변명의 근거로 제시하는 논리는 회계감사의 한계성과 독립성의 미흡.

대우처럼 회사 임직원이 치밀하게 공모해 저지른 회계부정은 정상적인 회계감사를 통해서는 결코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연간 거래건수가 수십억건에 달하는 대기업을 감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시스템을 계속 감시하는 상주감사시스템이 도입돼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또 감사보수와 계약연장에 코 꿰어 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도 문제다.

감사대상법인의 80%가 12월 결산에 몰린 기형적인 결산구조,전산조작을 통한 교묘한 조작,실체조차 몰랐던 유령 해외법인 등 대우의 분식회계는 정상 감사를 통해 적발하기란 불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대우 특별감리는 부정의 정황을 포착한 당국이 공권력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고 집중적으로 조사를 실시한 특수목적 감사. 특별감리에서 적발한 분식회계를 정상감사에서 적발하지 못했다고 감사인에 모든 회계부실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논리다.

산동은 특히 대우가 해외자금조달 창구로 주로 활용한 런던의 비밀법인인 BFC는 감사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법인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주장한다. 대우는 역외 비밀계좌 BFC를 통해 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계열사의 이자지급 및 손실보전,해외법인 운영자금 등에 사용했다.

대우그룹은 부채누락 이외에도 회계조작의 모든 기법을 총동원했다.

대우 특별감리단이 파악한 분식금액 22조9000억원을 유형별로 보면 ▲부채등 차입금 누락 15조원 ▲매출채권 과대계상 및 부실채권 미상각 4조원 ▲재고재산 튀기기 2조원 ▲설비등 과대계상 1조원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한 금액 1조원 등이다. 매출이나 자산은 늘리고 부채나 비용은 줄이는 전형적인 순이익 뻥튀기 방법으로 투자자를 현혹한 것이다.

외국법인에 근무하는 한 회계사는 재고자산 부풀리기,매출채권 과대계상 등 전통적인 분식수법이 상당수 포함된 점을 들어 정상적 감사를 통해 분식결산을 도저히 밝힐 수 없었다는 회계법인의 주장은 논리가 다소 취약하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법인의 차입금 누락등 현실적으로 감사가 불가능한 부분까지 회계법인의 책임으로 못박은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이는 법정에서 가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회계법인의 한 임원은 “국내현실에서 보면 산동은 재수가 없어 걸린 케이스”라며 “산동측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계법인의 독립성 보장되고 사회전체가 투명한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회계법인의 반발이 사라질 것”이라며 “기업이 정당한 사유없이 감사인을 변경할 경우 감사인의 반론권을 인정하고 결산기를 분산하는 등의 방안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회계전문가는 “부실감사를 조장한 여러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징계나 소송 등으로 한꺼번에 회계법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회계연구원 김일섭 원장은 “업계가 잘못을 저지른 법인을 두둔하기보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투명성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jklee@fnnews.com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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