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경제를 추스르자]1부(중)금융시장 핵폭탄 '회사채'

박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19 05:05

수정 2014.11.07 12:52


회사채가 문제다.

3년 전 외환위기 이후 집중 발행된 막대한 물량의 회사채가 속속 만기일을 맞고 있으나 3∼4대 그룹 우량계열사를 제외하고는 회사채 차환발행이 안되고 있다. 회사채 차환발행 실패는 기업들의 자금난과 흑자도산으로 이어진다. 기업도산은 즉각 금융기관들의 부실여신 증가로 연결되어 경제전반에 다시 총체적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최근 금융시장 경색과 증시 폭락의 본질은 사실상 회사채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기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채는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의 폭약 더미와도 같다.


◇얼마나 돌아오나=하반기 이후 올 연말까지 만기도래할 회사채 만기물량은 20조원을 넘어선다.특히 4· 4분기에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자금확보를 위해 앞다퉈 발행한 회사채 만기가 집중,만기물량이 15조9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회사채는 올 1월부터 월평균 2조3000억원∼2조7000억원씩 만기가 돌아 왔지만 지난 6월 3조1933억원,7월 5조5462억원 등으로 늘어났다. 11월에는 3조5095억원,12월 한달 동안은 무려 9조7678억원이나 집중돼 있다.

이와 함께 내년 상반기에 상환해야 할 회사채가 25조원에 달하고,하반기에도 36조7052억원이 몰려 있어 올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회사채 만기로 인한 자금경색은 내년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회사채 소화할 곳이 없다=문제는 이 처럼 회사채 만기물량이 쏟아지는데도 이를 소화할 수요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주 매수처인 투신권은 실탄이 진작 떨어졌다. 투자자들의 이어지는 환매요구도 감당하기 버거운데다 최근 수익증권 수익률 악화로 투신권으로의 신규자금 유입이 거의 끊겼기 때문.

은행,보험 등 여타 기관들도 2차 구조조정에다 BIS비율 맞추기에 매달리고 있어 BIS비율 산정시 위험자산으로 간주되는 회사채 매입을 꺼리고 있다.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회사채 신규발행은 고사하고 차환발행도 어려운 상태다.사정이 악화되자 일부 중견기업들은 만기도래 회사채를 차환발행으로 막지 못해 기업어음(CP)발행을 통해 메우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설비투자자금마저 CP로 조달하고 나섰다.

대신경제연구소의 채권담당 양경식대리는 “올 하반기와 내년에 돌아올 회사채 규모가 금융시장의 최대 불안요인”이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차환발행이 어려울 정도로 신용등급이 낮아 신용경색이 우려된다” 고 지적했다.

◇우량채 우선 풍토=증시침체로 증자가 어려워지자 삼성 현대 LG SK 등 4대그룹 계열사들은 적극적인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으나 4대 그룹 계열사들도 우량사만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얻고 있다.

지난 8월달에 이 4대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모두 1조5840억원으로 지난 7월달 대비 5940억원 늘어났으나 신용등급이 낮은 BBB급 이하 채권은 오히려 7월의 41%에서 15%로 25%포인트나 급감했다.또 BIS 자기자본비율 맞추기에 급급한 은행권도 8월말 현재 신한은행이 국채 보유규모가 10조 7430억원 등 국고채 매입에 집중,올들어서만도 7조원어치의 국채를 매입했다.반면 이 기간 은행들의 회사채 매입은 각 은행별로 1000억원 이하에 머무르는 등 우량채 편중 현상을 보였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의 김성민팀장은 “2차구조조정과 BIS 비율을 높이려는 은행 등 기관들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기관들이 국채 등 우량채권에만 집중하는 형태는 결국 국내 금융시장 자체를 경색시켜 부메랑으로서 금융기관들의 숨통을 다시 조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주식·채권시장 영향=채권시장에서 회사채의 공급 과잉은 필연적으로 채권 수익률,즉 시중 실세금리의 상승을 수반하게 된다. 회사채 소화가 안될 때 발행기업들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은 기업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져 우리 경제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다시 가져다 주는 악재다. 98년 이후 정부가 만난을 무릅쓰고 저금리 정책을 고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증시에도 악영향을 준다.

여기에다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유가 고공행진,대우차 매각 실패로 예상되는 구조조정 지연 등 내외부요인마저 겹쳐 시장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별한 호재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시장 침체는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회사채의 주요소화기관이었던 투신권이 회복되지 않은 한 시장의 활기는 되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한투신운용의 류희대 채권운용팀장은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과 회사채 만기물량 부담으로 인한 자금경색 지속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회사채 만기물량이 시장회복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문제는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회복”이라고 분석했다.

/ mkpark@fnnews.com 박만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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