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꽁트] 골프에도 천적이 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0 05:05

수정 2014.11.07 12:51


먹이 사슬에는 천적이 있다. 골프에도 천적이 있다.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말이다.

지영이는 내가 권유해서 골프를 배웠고 머리를 올리던 날도 내가 동행했다. 나는 그녀의 골프실력 향상을 위해 작은 내기를 제안하고는 했었는데 그녀는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 내가 내기를 제안한 까닭은 집중력을 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골프공 하나를 걸더라도 내기가 걸린 퍼팅스트로크와 그렇지 않은 퍼팅스트로크는 다르다. 훨씬 신중해진다. 기브가 없기에 숏퍼팅 연습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지영이는 이길 승산없는 게임에 도전할 바보가 아니라면서 단 한번도 내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록에는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소풍을 나온 듯 덕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한 라운드를 돈 뒤에도,그녀가 하는 말은 늘 같았다.

“오늘은 내가 너한테 3타졌어.”
그녀는 내게 뒤진 3타를 따라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녀가 나보다 3타 정도 점수가 좋은 경우도 있었다.

“봐,니가 나보다 3타 앞섰으니까 다음 번엔 우리 내기 한판 붙자.”

나는 그녀를 꼬드겼다. 나는 솔직히 그녀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한번도 내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과 내기로 단련된 사람은 실전에서 차이가 난다.

“너하고 나하고 봄부터 다섯 번 쳤는데 그 다섯 번 중에서 내가 겨우 한번 이긴거야. 다섯라운드 통산하면 니가 10타나 이긴거라구.”

그녀는 내가 언제 어느 골프장에서 몇 타를 쳤는지 줄줄이 외웠다. 나는 그녀의 기억력에 탄복했다. 나도 잊어버린 내 점수를 기억해 주다니….

“이번에 이겼으니까 앞으로는 얼마든지 이긴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어때 할래?”

“안 해.”

일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 입을 닫아버렸던 지영이였다. 그런 지영이가 내기를 하자고 덤비는 것이다. 내가 골프엘보라는 난치병에 걸려서 거의 두 해를 골프와 담을 쌓은 줄을 알기 때문이다.

“너,나 팔병신인 줄 알면서 내기하자고 그럴 수 있니?”

“가끔은 필드에 나갔다면서….”

“100개씩 친다니까. 정말야. 지난 번 같이 나간 애들한테 물어봐.”

“그럼 내가 9홀에 2개씩 핸디 줄게.”

아무리 세상은 뒤바뀐다지만,지영이같은 새까만 쫄짜가 감히 대선배에게 함부로 덤빌 수 있는지,분하고 절통해서 까무러칠 뻔했다. 나는 하극상을 대역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넌 나쁜 애야. 니가 초짜일 때 나한테 수업료를 받쳤으면,니가 부은 곗돈을 이제 몫돈으로 챙겨도 되겠지만,넌 나한테 곗돈을 부은 적이 없는데 지금 니가 내 지갑을 털겠다는 건 강도 짓이지.”

“따면 다 돌려준다니까.”

이러면서 약을 올린다. 내가 팔이 아파서 쉬는 사이 지영이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의 라운드를 했다. 연습장에서도 개근상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 해보자. 내가 선배를 추월했듯이 너라고 하지 말란 법 있겠니….”

나는 지영이와 결전의 날을 앞두고는 잠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인생이 그렇고 골프가 그렇다지만 왠지 분했다.
나는 전의를 상실했고 마음을 비웠다. 그러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지영이가 내 앞에서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나는 두 번의 라운드에서 두 번 지영이를 이겼다.

“안되겠어. 난 너하고는 내기 안할래. 니가 내 천적이야. 어프로치하고 퍼팅에서 너를 당할 수가 없어.”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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