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를 기회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4 05:06

수정 2014.11.07 12:48


지난주는 정말 악몽의 한 주였다.주식시장만 본다면 블랙 먼데이로 시작해서 블랙 프라이데이로 끝났다.국민의 정부가 집권 2년 만에 환란 극복을 공언한 이후 한국 경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그동안 한국 경제의 회복과 성장에 효자 노릇을 해온 반도체의 국제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관련 주식을 필두로 주식시장이 무너졌고,여기에 예상치 못했던 유가의 고공행진·미국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 선언 등 충격적인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체질 약한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펀더멘털과 시장경제를 외치고 과도한 불안감 탓을 하던 정부는 방향을 바꿔 강도 센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국민이 안심하고 맡긴 우체국 예금을 투기성 채권을 사는데 쓰겠다고 하지 않나,외국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포항제철 주식의 1인당 소유한도를 폐지하겠다고 하고 또 기업인수합병(M&A) 관련 규제를 모두 풀겠다는 등 뒤늦게 주식시장 부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예견된 일

사실 현재의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지금까지 추진해온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은 옥석을 가린다는 차원에서 보면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대우사태도 별다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공부문의 도덕적 해이는 워크아웃 기업들에 비해 심하면 심했지 못할 것이 없다. 재벌을 대체할 성장엔진으로 기치를 내걸었던 벤처기업들도 금융시장 경색으로 고사위기에 놓여 있다.선거전만 해도 추가공적 자금은 필요없다고 국민을 현혹하더니 이제 와서 40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대내외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암울한 내용뿐이다.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다.제2의 경제위기 문제가 논의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최근 경상수지 흑자 폭 축소 등의 거시경제의 움직임이나 금융 및 외환시장의 동향이 지난 97년말 위기 이전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과 해외여건이 지난해와는 다르게 악화조짐이 있는 점,정부정책의 시의성과 일관성 그리고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 점 등에서 연초부터 위기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총체적 난국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이번 위기감의 도화선이 된 주식시장 폭락이 단순히 유가 폭등·포드사의 대우차 인수포기·반도체 수출단가 하락 등 해외악재 탓만은 아니라는 점이다.그보다는 원칙을 무시한 경제운용과 부진한 구조조정에다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와 능력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표출이다.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과거와 같은 임시방편적인 대책을 다시 사용한다면 이는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정부는 현 상황을 총체적 난국으로 인식하고 문제 인식과 해결방안 제시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한빛은행 사건 같은 정치적 현안이나 의약분업 사태와 같은 사회적 현안들이 경제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그렇게 해서 시장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고통과 비용을 각오하고라도 정부·공기업·금융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마무리 짓겠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이 될 수 없다.위기의 증시를 살리는데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국회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해야 한다.공적자금 추가조성 동의안·금융권 구조조정의 핵심인 금융지주회사법·기업분할법·워크아웃 기업분할을 촉진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의 국회 통과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위한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아직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금융시장 불안에 덧붙여 경기 연착륙 실패,이에 따른 기업 연쇄 도산,외국인 증시이탈 등 최악의 시나리오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의 예를 보아도 통상 외환위기 이후 3∼4년 차가 안정적 경제궤도 진입을 위한 중대 기로다.우리경제는 현재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정책당국자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는 등 개혁추진의지를 보인다면 희망은 아직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 촉진이야말로 위기 재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인식하고 어렵더라도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비장했던 각오로 돌아간다면 이번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위기를 느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위기를 공감하여 모든 경제주체들이 합심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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