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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추스르자](하)제조업을 살리자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4 05:06

수정 2014.11.07 12:48


우리 제조업은 자금난·기술부족·인력난·경쟁격화라는 4중고를 겪고 있다.2단계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금융기관들은 여신을 보수적으로 운용,신용도가 떨어지거나 담보력이 취약한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록 8월중 어음부도율이 지난달의 0.35%에서 0.18%로 하락하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표상의 수치일 뿐이라고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살아 있는 기업들은 지금까지 아예 은행돈을 빌려쓰지 않은 기업들이거나 사채시장에서 급전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쓰러진 기업들중 제조업의 근간인 중소기업들이 많다.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만497곳이나 도산했지만 경기회복 덕택에 쓰러진 중소기업은 3364곳으로 대폭 줄었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벌써 2600여곳의 중소기업이 부도를 냈다.
2단계 금융구조조정이 본격화돼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묶으면 기술력이 있어도 도산하는 기업들은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산업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쓰러진 중소제조업체는 모두 2만여개로 추산돼 사실상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하고 있다.

◇제조업의 IT화가 살길이다=요즘 제조업체들이 안고 있는 다른 숙제는 바로 IT화다.국내외의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들은 한편으로는 기술개발을 서두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감축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받고 있다.이같은 두가지 요구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IT화가 제시되고 있다.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T)의 접목을 통한 기업간·기업과 고객간 전자상거래는 유통비용의 축소를 통한 기업의 이익증대에 크게 기여한다.산업연구원(KIET)의 송병준 박사는 “제조업의 IT화는 비용감축,생산성 향상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우리 제조업이 수행해야 할 필연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성질의 작업이 아니다.산업자원부 전자상거래총괄과의 정재훈 과장은 “일부 제조업체들은 IT화를 단순한 대외 홍보용 사업쯤으로 여기고 있는 데다 투자를 하지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정과장은 “IT화는 그러나 비용감소·거래의 투명성 제고·산업구조의 고도화·에너지 절감 등 4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방안”이라고 소개했다.

IT화는 사내정보화와 전자상거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대기업체들은 생존력과 수익성 창출 차원에서 빠른 속도로 이를 추진하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정부는 기업과 공동으로 올해 말까지 철강·섬유 등 9개 업종의 e마켓플레이스(E-Market place)를 구축하고 여기에 11개 업종을 추가해 거의 모든 업종을 망라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의 대책은 없나=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중 국내부품소재 산업의 일본 투자 유치와 IT이니셔티브 채택 등도 정부 대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또 전자문서·카탈로그·지불수단·콘텐츠의 표준화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필요한 실무 인력은 상공회의소 지역본부 등 전국 145곳의 전자상거래지원센터를 통해서 양성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임원급과 기술자는 시범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의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교과과정을 이수하게 한 다음 오라클 등 IT 기업의 현장에서 실습을 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교육부도 전자상거래에 필요한 인력수급을 위해 각 대학이 신설승인을 요청하면 얼마든지 허가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이며 단기적으로는 현재 2곳에 불과한 ‘전자상거래학과’를 앞으로 10여곳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IT화 앞에는 거대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전자상거래확대에 따라 필요성이 떨어지게 되는 유통 부문의 조직적 반발이다.슈퍼마켓연합회와 손을 잡고 라면 등을 소비자에게 전자상거래를 통해 공급하던 ‘알짜마트’가 중간상인들의 조직적인 반발로 공중분해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제조업의 IT화와는 별도로 제조업 자체의 기술 경쟁력 향상도 필수 과제다.우리 제조업의 취약점으로는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기술이 없다는 점이 꼽혀왔다.일본의 칼럼니스트인 오마하 겐이치는 “부품산업의 유무가 한국과 일본의 최대 차이이며 한국은 부품과 자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조립가공·수출하는 부가가치가 낮은 경제”로 비꼬기도 했다.

LG전자의 권수호 부장은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업계의 가공능력은 일본에 뒤지 않으나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 경우 부품에 어떤 변화가 생길 지 예측하는 설계능력은 크게 뒤처진다”면서 “이는 장기적인 인적자원 보강,설비투자의 확대를 통해서 가능하며 부품을 납품받는 대기업 경영자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의 임관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의에서 산자부 주최로 열린 ‘기술혁신 전략 민관대토론회’에서 “무엇이든 자체 개발 방식으로 한다는 과거의 고집을 버리고 경쟁사와도 협력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면서“연구소간·산학간·기업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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