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주실업 퇴출의 의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6 05:07

수정 2014.11.07 12:46


미주실업 주거래 은행인 서울은행을 비롯한 19개 채권금융기관은 계속 자금을 지원하여 기업을 살리는 것보다는 이 시점에서 청산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단순 명쾌한 판단에서 기업개선작업(원크아웃)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4월 워크아웃 대상에 들어간 이래 채권단으로부터 86억원의 출자전환과 120억원의 자금지원을 받은 미주실업은 기업부채가 자산보다 190억원이나 많아 지금 청산하면 470억원이 채권단의 몫으로 남는 반면 기업을 계속 유지할 경우 그 가치는 412억원에서 468억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실사를 맡았던 한국신용평가의 결론이다.

우리가 이번 결정에 주목하는 것은 미주실업이 기업규모에서가 아니라 회장인 박상희씨의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그 비중이 과대포장된 전형적인 ‘정치기업’이며 이와 유사한 형태의 부실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그리고 살생부를 작성하여 부실기업 정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은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다.

부실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경제가 비경제논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살생부’라는 살벌한 용어까지 인용하면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은 우리 경제여건이 더 이상 비경제 논리에 끌려 다닐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번 미주실업의 워크아웃 퇴출은 부실기업 정리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미주실업의 대주주인 박상희씨는 중소기협중앙회 회장과 집권당인 민주당의 전국구 현직의원의 겸직을 고집함으로써 비판을 받아온,그리고 자기 소유 부동산을 기업에 비싼 값으로 매각한 뒤에도 소유권 이전등기를 넘기지 않아 워크아웃 기업주의 부도덕성의 한 전형으로 지탄을 받은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힘,또는 영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우리 경제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말해 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부실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미주실업의 워크아웃 퇴출을 계기로 정치력으로 과대포장된 많은 부실기업은 결국 소비자,나아가서 국민의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 그 책임을 물음과 동시에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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