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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꽁트] 클라이막스에서 ´정지´의 묘미(?)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7 05:07

수정 2014.11.07 12:45


토미 아머는 톱 스윙에서 반드시 ‘정지’의 순간이 있어야 올바른 템포가 유지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벤 호건이나 샘 스니드,보비 존스 등 유명프로골퍼들은 백스윙이 어떻든지 간에 톱에서 언제나 정지되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레슨 프로는 내가 자신의 가르침을 못 받아들인다고 으르렁댄다.

“숫자를 세보세요. 하나,둘,쉬고,셋. ‘둘’에서 잠깐 쉬었다가 ‘셋’에서 다운 스윙을 시작하는 겁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못하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다.

“이봐요. 선생님. 스윙이 부드럽게 이어져야지, 둘에서 끊어지면 첨부터 다시 숫자를 헤아려야 하잖아요. 전 돈을 세다가도 누가 방해해서 끊어지면 첨부터 다시 센다구요.”

프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뒤돌아선다.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으므로 프로의 썩은 밤을 씹은 듯한 표정이 시사하는 바를 짚어낸다.

“지독히도 머리가 나쁜 아줌마네….”

이것이 프로가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고 있는 말인 줄도 안다. 그러나 프로가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줄도 안다.

그토록 프로가 ‘정지’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를 했지만 내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절대 정지’의 ‘절대 필요’를 통감한 것은 90타의 벽을 깬 이후이다. 드라이버로 티샷한 공이 200야드를 넘게 날아가지 않고는 죽어도 싱글타수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정지’를 해야만 헤드의 무게를 느끼고,임팩트를 감지하며,비로소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뒤늦게 터득한 것이다. 그러나 겨우 이론에만 눈을 뜬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정지’,그 오묘한 진리를 몸으로 터득하게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남편이다.

우린 아들도 낳았고 딸도 낳았다. 더 이상의 자식은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피임을 해야할 것이다. 일회용 고무제품은 서로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가 불임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가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삼판 양승 고스톱으로 결판을 낼 것이냐,아니면 겔러웨이 방식 3회 골프라운드를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멱살을 잡고 병원으로 직행할 것인가,피튀기는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임신이야 당신이 하지,내가 하남. 난 내 몸에 칼 대기 싫어.”

“흥. 그럼 하나 더 낳아놓고 나는 조용히 나갈테니까,애 셋 데리고 새장가 가시구려.”

부부란,낮에는 싸워도 밤에 할 일은 한다. 수술대의 희생양을 결정할 때까지는 임시방편으로 ‘정지방법’을 쓰기로 했다.

남편의 핸디캡은 싱글. 가까스로 보기플레이나 하는 나보다는 한수 위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실전이나 이론에도 강하다. 배우고 따를 점이 많다. 밤일에 있어서도 백스윙의 톱,클라이맥스에서 기막힌 순간정지를 보여준다. 바보같이 일을 그르치는 쪽은 나다. 이론을 몰라서 그르치는 게 아니다.
이론은 익혔으나 실행을 못하는 것이다.

‘여보,멈추지 마. 정지하면 안돼!”

싱글핸디캐퍼답게 스윙의 톱,클라이맥스에서 초인적인 극기로 ‘순간정지’를 하고 있는 남편의 잔허리를 끌어안으며 내가 외쳤다.
쩝…. 나는 왜 낮이건 밤이건 필히 정지해야 할 순간에 브레이크를 못 거는지 모르겠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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