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경제를 추스르자-전문가 긴급 좌담]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9.29 05:08

수정 2014.11.07 12:43


본지는 우리경제의 최근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총3부 9회에 걸쳐 연재한 ‘경제를 추스르자’시리즈 마지막 순서로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국민의 정부 초대 재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외환위기극복에 앞장섰던 이규성 KAIST 교수를 비롯해 박진근 연세대 교수와 진영욱 한화증권 사장이 참석했다.

▲사회=현장에 계신 진사장께서 먼저 최근 경제상황을 짚어주시죠.

▲진영욱 사장=증시가 위축되고 회사채시장은 거의 작동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또 국내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게 반영되는데 최근에는 정책 생산이 늦게 이루어지는 것도 한몫 했다고 여겨집니다. 증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외국인들이 공적자금 50조원 투입이라는 호재가 나온 직후에도 매도를 계속한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주장보다 포트폴리오 조정차원이라는 의견이 강합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거시경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 시각, 아직도 일시적인 조정기라는 시각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규성 교수=국내 경제상황을 보면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선 고유가로 인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고 서민 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대우의 부실채권 문제, 법정관리 문제,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 현대건설 문제, 새한그룹의 워크아웃, 포드의 대우자동차 포기, 미국 증시의 급등락 현상 등이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인 충격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구조조정에 대한 연착륙이 가능하느냐에 따른 우려도 커졌다고 볼 수 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구조조정의 블루프린트를 내년 상반기까지 확실하게 실천해 대외신뢰를 쌓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박진근 교수=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고유가, 대우 문제, 그리고 의약분업, 정치불안 등의 문제가 복합되어 총체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 경제 정책 의지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조성되어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지난 96, 97년보다 지표적인 상황은 좋아졌지만 동태적인 측면은 더 나쁜 상태입니다. 현재 상황은 간단치 않은 잠재적 위기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교수=다행히 정부가 50조원의 공적자금 조성해 부실을 도려내고 하드웨어적인 구조조정을 금년 내에 끝낸다는 강한 정책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옳은 방향에서 제대로 접근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번 기회에 경제 체질을 만드는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올해 내 또는 내년 상반기 중에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끝내야 합니다.

▲박 교수=정부가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늦게나마 정도를 택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추가소요를 막고 공적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진 사장=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의 기반은 기업의 구조조정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업이 부실을 처리하지 못하면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 뻔합니다. 경쟁에서 도퇴될 기업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교수=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실을 정리해도 부실기업이 왜 생기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구조조정에서는 부실화 가능한 기업을 전부 털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지난 98년 64조원이 투입된 1차 구조조정 때 110조원의 부실채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90조원에 달하는 대우채권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있었죠. 미리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면 지금과 같은 경색은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부실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선 대손충당금을 쌓아 이 시점에서 확실히 부실을 털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실에 대해 즉시 처리할 수 있는 감독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 사장=대우 사건 이후에 공적자금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를 좀더 일찍 이끌어내 대처했더라면 부실 규모도 줄었고 이처럼 심각한 문제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적기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고 봅니다. 이번 기회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교수=기업들 입장에서는 한 고비만 넘기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야속하게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겪고 있는 금융위기의 교훈은 기업, 은행이 충실한 자기자본과 건실한 지배구조를 갖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신임을 받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기업이라도 손실이 나면 은행에서 즉각 자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금융의 참모습입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정부가 시켜서 한다는 생각보다는 노력하지 않으면 내 자신의 존립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박 교수=공적자금 투입은 당초 목적대로 잘 되고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합니다.

▲이 교수=공적자금은 금융시스템에 대한 안정은 물론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투명하게 쓰여져야 합니다. 공적자금 백서, 관리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향후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주가에 대한 대책보다는 자금흐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현재 은행권에는 자금이 넘쳐나는데 기관투자가들은 자금이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문간 자본의 흐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더불어 회사채 차환발행을 해야 하는 기업에 대해 신용문제를 덜어줄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해야 합니다. 채권투자 기금을 추가로 조성한다든지, 신용보증기금에서 부분보증을 한다든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행이 자금의 흐름에 대해 너무 조용하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 교수=한은이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중견기업의 자금 숨통을 터줄 수 있는 방안도 있습니다.

▲이 교수=증권금융 같은 곳에 자금을 대줄 수도 있지 않나요. 통화채를 주고 증권금융의 적격증권을 사주는 것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진 사장=중앙은행이 현재 상황에서 대처방안을 생각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교수=1차 오일 쇼크 때 한국은행이 자신의 임무가 아닌데도 위기극복에 큰 도움을 준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 당시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국민의 입장에서 기업 자금난, 증시 폭락, 유가상승 등이 전방위적으로 국민을 압박해 상당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정부는 과장된 위기라고 설명하는데 지금의 위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박 교수=정책당국은 어느 나라든지 시장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 국면은 위기국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교수=석유문제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대체 에너지원의 개발이나 해외 에너지원의 투자 확대 등을 통해 확보하고 다원화하는 시책을 써나가야 하는데 여기에 우리가 소홀한 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에너지 문제가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물가가 올라가는 대로 감수해야 하고, 성장둔화도 감수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인 무책임 모럴해저드, 집단이기주의를 떠나야 합니다. 지역간, 계층간, 이익집단간 화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의 에너지 결집이 어렵다면 생활문화를 바꿔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부에서는 효율적인 정책 입안과 때를 놓치지 않는 실행, 마무리를 통해 구조조정을 연말까지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지금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재발이 되지 않도록 투명한 경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죠.

▲박 교수=석유사용이 일본의 4배입니다. 에너지 효율에서 최악이죠. 이번 기회를 통해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진 사장=장단기적으로 금융 시장의 경색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동성은 충분합니다. 자금을 가진 측에서 자금을 풀지 않아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M2 증가율이 40%인데 M3 증가는 10%대입니다. 돈이 은행권에 몰려있다는 소리죠. 현재 은행은 개인대출 카드대출, 아파트 대출 등에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산업자금으로 유동성이 흐르지 않고 있습니다.

▲박 교수=200조원로 추정되는 부동자금이 국내에 투자되지 않고 안정통화권에 대한 투자목적으로 해외로 유출된다면 외환시장은 97년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투자기회가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불씨로 보아야 합니다.

▲이 교수=기업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우선 구조조정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구조조정 결과가 가시화 되기 전까지는 과도기적인 비상조치가 따라가야 합니다. 시스템상으로는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업이 투자자들한테 경영 행태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 또한 세계에서 승부하는 요체가 기술력이므로 이에 대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pompom@fnnews.com 정리=정명진기자
■전문가 좌담

◇좌담참석자

▲이규성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전 재경부 장관)

▲박진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진영욱 한화증권 사장

▲사회=우원하 증권금융부장

◇좌담일시=2000년 9월29일 오전 11시

◇좌담장소=서울 여의도 CCMM빌딩 12층 서전 오브라이언 룸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