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 콩트] 담력 키우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0.11 05:11

수정 2014.11.07 12:34


그린에서 퍼팅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골퍼의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는 한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코웃음 친다. 아마도 나에게는 그런 행운은 안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토끼처럼 겁도 많고 심장이 약한 여린 여자였다. 골프 라운드를 하면서 내기의 판이 두 배로만 커져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그린의 기울기를 읽고 잔디의 결을 탐색하느라 현기증이 일었고 지연플레이한다는 경고를 받았었다. 그러나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는 동안 배판의 배판에서의 버디 퍼팅도 겁내지 않고 구멍을 스쳐지나가도록 길게 밀어줄 만한 배포가 생겼다. 내 퍼팅을 지켜보던 사람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면 일으켰지 나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다.

박세리의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 세리의 아버지는 딸을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골프가 지극히 예민한 운동이긴 하지만 두둑한 배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골퍼가 수많은 갤러리 앞에서 벌벌 떨다가는 수백만 달러가 걸린 퍼팅을 성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내 별명은 ‘쌈닭’이다. 내가 이런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된 기막힌 사연은 나보다 골프를 잘하는 사람, 싱글핸디캐퍼와 라운드를 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백만장자를 만나고 싶거든 원룸이더라도 백만장자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고래를 잡으려거든 큰바다로 가야한다. 싱글핸디캡의 골퍼를 만나려거든 두말할 것도 없이 골프코스로 가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박꾼은 어디에서 살까. 카지노나 놀음방에서 살 것이다. 그런데 도박꾼도 골프코스에서 산다는 것을 꺽정씨를 만나면서 알게되었다. 내가 꺽정씨를 카바레에서 만났다면 제비인 줄 알았을테지만 골프코스에서 만났으니 골퍼, 그러니까 신사가 즐기는 골프를 하는 ‘신사다운 골퍼’인 줄 알았다.

목덜미와 귓바퀴가 햇빛에 그을어 반짝반짝 빛나는 남자, 2번 아이언과 로프트가 다른 3종류의 웨지가 섞여 있는 골프클럽세트를 소유한 남자, 왼손은 흑인의 손이요 오른손은 백인의 손인 남자의 핸디캡은 짐작할 만했다.

순진한 내가 그의 마수에 걸렸다. 핸디를 넉넉하게 주겠다는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신사다운 너그러움인 줄 알았다. 핸디를 줄 때는 가감법을 적용하고 회수를 할 때는 승제법이 적용되는 줄은 몰랐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생활비도, 곗돈도 다 내기골프로 해결한다고 했다. ‘구멍치기로 애인 밍크코트 사준 놈’이라는 별명이 사실처럼 들리는 남자였다.

내가 그에게서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운 것은 절대로 골프의 스윙이나 에티켓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오도록 부풀리고, 배짱을 두둑하게 키우는 법을 배웠다. 인정사정 피도 눈물도 없는 도박의 세계를 알게되었다.


나는 지갑을 강탈당해서 거지가 되기도 했고, 반찬값이 없어서 식탁에 김치 한가지만 올리다가 식구들을 에티오피아 난민처럼 만들 뻔도 했다. 꺽정씨에게 드라이버도 빼앗긴 적이 있고 퍼터도 빼앗긴 적이 있다.
퍼터가 없어서 그린에서 3번 우드로 퍼팅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여자의 별명이 쌈닭이라니. 그러나 누구라도 그런 극기훈련의 담금질을 받는다면, 쌈닭이 안될 골퍼가 어디 있겠는가.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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