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 꽁트] 몸으로는 안받아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1 05:17

수정 2014.11.07 12:17


“아까,동네 강아지가 여기 깃대에 대고 비료를 주고 가던데…. 이것봐요,강아지 쉬이 자국이 이쪽으로 흘렀잖아.”

내가 거의 ‘엎드려 쏴’와 흡사한 자세로 그린의 기울기를 읽고 있는데 꺽정씨가 말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강아지의 소변도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것이다.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착한 꺽정씨의 조언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퍼팅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공은 반대방향으로 흘렀다.


“이봐요,조사장. 이게 어디 강아지 오줌자국입니까. 잔디에 기계충이 슬었구만.”

다른 동반자의 말을 듣고,나는 잔디의 풀을 뜯어 냄새를 맡아봤다. 땡칠이의 소변이라면 찝찔한 냄새가 나야할텐데 톡 쏘는 독한 화학비료 냄새만 났다.

조언을 구하거나 조언을 해준 플레이어가 2벌타를 먹는다는 규칙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정신을 헷갈리게 하는 발언에는 왜 벌타가 없는 것일까. 아니,사랑하는 여자에게 거짓말만 해대는 남자에게 왜 하느님은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일까.

꺽정씨는 거짓말만 하는게 아니다. 내기골프에서는 기브도 안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구리반지,은반지는 못해줄 망정 반찬값마저 훑어가야 된단 말인가. 그러나 얄미운 꺽정씨의 지론은,사랑은 사랑이고 내기는 내기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도 어리숙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길 승산이 없는 내기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세금도 안내는 수입의 쏠쏠한 맛을 알기에 덤비는 것이다.

근래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꺽정씨의 지갑이 내게 통째로 건너왔다.

“횡재하셨구만….”

꺽정씨가 볼멘 소리로 투덜댔다.

“횡재라뇨,당치도 않은 말씀. 피땀흘린 노력의 대가죠.”

얼마만인가. 그에게 지갑을 털리고 반찬값이 없어 맨밥을 먹던 나날들이 눈물과 함께 펼쳐졌다. 열받은 그가 다음 홀에서도 오비를 두방이나 날렸다. 인내심이 많으신 하느님도 드디어 꺽정씨를 벌 주려나보다. 승자의 기쁨을 맛볼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물러날 수 없다.

“전 달랑 몸뚱아리 하나 남았습니다.”

“몸뚱아리는 빼고…. 까무이 드라이버는 계시겠죠. 언니 드라이버 모셔와요.”

나는 캐디에게 그의 골프백에서 드라이버를 꺼내오라고 명령했다.

“몸으로 드리면 안될까요?”

그가 내 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몸이라뇨. 생으로 회쳐먹어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영계라면 모를까,질기디 질긴 노계가 몸으로 덤비다니. 어림없는 소리. 몸은 안 받아요. 돈으로 내놔요.”

나도 그의 귓불을 잡아당겨 간지럽게 속삭여줬다.

“이 몸은 말입니다.
이날,이순간까지 김작가가 돈 다 잃고 나한테 몸으로 때운다는 말 나오기만 목빠지게 기다린 몸입니다.”

꺽정씨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청출어람이란 소리도 안들어 봤어요? 사랑은 사랑,내기는 내기라고 했죠? 꺽정씨한테 비싼 수업료 바쳐가면서 배운 내기골프의 매너죠.”

그가 예전에 내게 그랬듯이,나는 꺽정씨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눈을 부라렸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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