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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프로 우먼] 시소커뮤니케이션 김기욱 사장


서울 서초동에 있는 중소기업 홍보대행사 시소커뮤니케이션 사무실은 테헤란 밸리에 있는 여느 벤처기업 사무실과 달리 초라하다. 15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8명의 직원들과 한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는 김기욱 사장(38)은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났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손해만 보는 세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운전중에 남자들하고도 싸우기까지 하지요.”

영국에서 패션 홍보와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5년 6개월을 보내 남과의 경쟁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지만 대한민국 비즈니스 사회에서의 여사장’이라는 위치에 선 지금은 치열한 전장에서의 지휘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다. 서울 생활 3년 동안 그의 눈빛은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상당히 ‘전투적’으로 변했다.

몸이 약했던 김 사장은 건강을 위해 중학교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고등학교 때 독감에 시달리면서도 도내 빙상경기대회에 무리하게 출전한 결과 폐결핵 환자라는 명찰이 따라 다녔다.

“어머니가 몸이 약해서 그런가보다 하시며 인삼으로 보약을 달여주신 것이 병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죠.”

당시 폐결핵은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병을 옮길까봐 친구들과 밥도 함께 먹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알면 저를 멀리할까봐 더 고민했지요.”

힘들게 고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했다.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집안 권유로 불문학과에 입학,4년 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어깨동무’ ‘여원’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91년 5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기자 생활에 대해 회의가 들 무렵이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동구권과의 수교가 잇따라 이루어지면서 해외 유명인사들과 인터뷰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장벽이었다. 영어엔 자신을 했었는데 언제나 짧은 영어에 한계를 느꼈다.

“29살이라는 나이에,그것도 여자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죠.”

오랜 고민 끝에 ‘이번에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생각으로 영국유학을 떠났다. 영국을 택한 이유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보면서이다. 작가의 살아온 환경이 곧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의 고향은 그 작품의 음울하고 음산한 분위기 그대로여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영국에서의 문화적 충격은 매우 컸다. 국내 정치기사를 1면으로 다루는 한국과 달리 영국의 신문 1면은 월드뉴스가 차지했다. 방안에서도 세계가 돌아가는 일들을 한 눈에 알 수 있었고,기사들도 날카롭고 수준 높은 글들이 많았다.

“선진국은 반드시 경제적 기준만은 아니더라구요. 성숙한 문화와 정치,경제 등이 전반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유학 초반에는 ‘여원’의 특파원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영국 BBC 국제방송국의 한국어 프로듀서로 영국항공의 기내 한국어 라디오 프로그램 ‘블루스카이’를 제작했다. 이후 런던 패션스쿨에서 패션 홍보와 저널리즘과정을 마치고 95년 말 귀국했다.

김 사장은 요즘 힘들다. 그가 영국에서의 전공을 살려 홍보대행사를 차린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이 시작되던 97년 12월이니 올해 12월이면 꼭 3년이다. 벤처와 코스닥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홍보대행사들이 대부분인 업계에서 이제는 고참 소리를 들을 법도 하지만 그의 현재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의 고집 때문이다. 지난 98년부터 중소기업 무료 홍보를 시작,지금까지 300여개 중소기업의 홍보를 대행했지만 시소커뮤니케이션이 현재 확보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10개사가 채 안된다. 무료 홍보 덕분인지 홍보대행을 의뢰하는 기업은 요즘도 많지만 펀딩을 위해,코스닥 등록을 위해 이곳을 찾는 기업가 혹은 벤처정신이 실종된 채 머니게임에 몰두하는 기업인은 김 사장의 경원 대상이다.

“기업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공에 알리는 것이 홍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축소나 과장은 긴 안목에서 보면 기업의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지요.”

그는 적어도 홍보에 관해서는 자신의 소신을 굽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와의 동등한 관계’ ‘접대를 통한 로비 사절’ 등 올바른 홍보 문화를 위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지만 직원들은 클라이언트를 잃을까 조바심을 낸다.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최고경영자(CEO)들처럼 살라”는 충고까지 한다.

“사장이 무슨 마티즈를 타느냐고 주위에서 하도 말을 들어서 며칠 전에 차를 바꿨어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그는 요즘 주위사람들에게 “10억원을 벌고 싶다”고 말한다.
자선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고 그 꿈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어야 자선도 가능합니다. 10억원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자선단체를 세운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매일 아침 서초동 연립주택의 문을 나선다.

/ jerry@fnnews.com 김종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