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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딜레마]˝개입하면 관치, 안하면 방치˝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5 05:18

수정 2014.11.07 12:14


“개입하면 관치,안하면 방치”

경제정책 입안의 핵심부처인 재정경제부의 고참 서기관의 하소연이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외환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재정경제원의 해체이후 재경부 실무자들은 이같은 말을 자주 털어놨다.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뭔가’를 내놓기를 기대했고 그같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정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산업자원부는 완전 무장해제된 상태다.80년대 중반이후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각종 근거법령을 없애거나 규제수준을 대폭 완화했다.그 결과는 자동차·석유화학·반도체·철도차량·선박용엔진 등 주요 부문의 중복과잉 투자로 나타났고 금융외환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게 오늘날 경제부처의 현실이다.민의를 존중하고 민간자율에 의한 시장경제의 정착을 바람 또한 간절하지만 중복과잉 투자와 금융외환위기라는 시장실패로 고심하고 있다.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 퇴출과 금융구조조정의 뒤처리를 해야지 새로 판을 벌릴 단계는 아니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다른 부처에서는 지금처럼 위기가 재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시점에 이제 정부는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후자가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다.시장실패는 곧 정부실패의 결과물이요 규제완화를 이유로 시장규율의 정착을 방치하는 것 또한 정부 책임의 방기라는 것이다.요컨대 정부는 시장규율이 달성될 수 있는 시장보완자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논리다.

산자부 고위 관계자는 “중복과잉투자의 발생시점은 80년대 중반이후부터 개별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근거가 폐지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강조된 민간주도 경제운용기”라고 지적하고 “이같은 시장실패가 정부가 조성한 시장환경 아래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부실패의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시장기구’는 성숙되지 않는데 반해 일부 기업의 지나친 ‘이기적 동기’는 시장을 파괴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이런 근거에서 이제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개입장치의 폐지가 곧 시장경제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국민적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상품시장,기업인수·합병(M&A) 시장,금융시장,경영인시장 등의 활성화를 통한 시장규율을 확립하는 데 특히 주력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소비자·노동자·채권금융기관·소액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권리행사를 활용,시장파괴 행위에 대항하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구조조정 이후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첨단부문의 투자전략 수립과 장기비전의 제시 등 정부의 전략적 역할은 개입이냐 방치냐 하는 갈등속에 묻어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정부 역할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하겠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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