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경제 위기의 실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5 05:18

수정 2014.11.07 12:14


논란이 되었던 제2차 부실기업 정리명단이 지난주 발표되었다.이번 주에는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진통은 있었지만 기업과 금융 개혁의 크나큰 현안들이 가닥을 잡게 되면서 시장이 줄곧 주장한 구조조정이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물론 이번 부실기업 정리를 구조조정의 완료로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위기를 겪었던 선진국들의 경우도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는데 최소한 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다.이번 현대건설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에 대한 조건부 회생 결정이 대마불사에 대해 면죄부로 인식되면서 개혁의 후퇴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던 구조조정의 불안감은 어느 정도 걷혀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기업구조조정은 경제 체질을 철저히 바꾸는 것이다.따라서 혼란과 고통은 불가피하다.그야말로 옥석을 가리는 기업퇴출 작업은 정부와 채권단이 중심이 돼 능력이 없는 기업을 인위적으로 가려내 국가전체의 산업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철저히 진행돼야 기업들은 재무구조와 지배구조를 개선시켜 경영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또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핵심역량을 자신있는 업종에 집중시키고 가망없는 업종은 과감히 축소·정리하게 될 것이다.
이번 기업퇴출 파장이 경제 전반에 어떤 수준의 후유증을 가져올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그렇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론의 발단은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지연됨으로써 부실을 키우고 급기야 시장의 신뢰를 잃은 데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실기업의 정리는 우리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다.다만 정부는 집단퇴출에 따르는 중소기업의 연쇄부도와 대량실업 등 그 후유증을 최소화 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망령으로 등장하고 있는 위기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정부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우를 범하였다. 구조조정의 초점을 금융 및 기업의 재무구조 건전성 개선을 우선하다보니 성장성과 수익성 제고의 문제는 자연히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다.부실채권 회수를 목표로 재정금융정책 위주로 추진하다보니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은 논의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위기의 실체는 이번의 퇴출작업 이후 기업 경쟁력이 기대한 만큼 높아지기는 어렵다는 점이다.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현재 국내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1위를 자랑하는 상품은 55개로 경쟁국인 중국(306개)·대만(206개)에 비해 훨씬 뒤지고 있다.

특히 수출이 기술경쟁 상품이 아닌 범용상품 위주의 출혈수출이 이뤄지면서 수출 채산성도 나빠지고 있다.97년도 수출채산성을 100으로 할 때 2000년 상반기에 수출채산성은 89.4로 떨어진 상태다.더욱이 현재 경쟁력이 있는 상품도 조만간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진국의 시장개방 압력은 무차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굴뚝산업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지고 새로운 산업의 발굴은 요원한 상태다.한마디로 이대로 간다면 기업을 잔뜩 퇴출시켰는데 경제위기의 탈출구가 발견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정부는 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종합적인 틀을 다시 짜야 한다.구조조정정책과 경쟁력 강화정책 추진에 앞뒤가 있을 수 없다.구조조정과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은 목표와 수단을 분명히 구분하여 종합적으로 동시에 실시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있지만 외국인 투자가들은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과 경제성장 잠재력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다.이제 정부는 경제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확히 진단해 위기대책을 세워야 한다.위기의 실체가 심리적 요인이나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경기지표가 일시적으로 나빠지면 마치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는 현상도 지양돼야 한다.반면에 이번의 기업퇴출이 가져올 충격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놀라울 만큼 성숙된 역량을 보여 주고 있는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의 반응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경제는 쇠퇴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고 안정적 성장으로 돌아설 수도 있는 상태에 놓여있다.정부는 확고하고 일관된 개혁의지를 보여주어 심리적 불안을 해소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쌓아 잠재된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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