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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우중공업―엔타이공장 르포] ´대우´ 굴삭기굉음 中原을 깨운다


21세기 세계 최대의 시장 중국.그러나 중국 시장 진출의 문은 여전히 높다.그동안 국내기업들을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문을 세차게 두드렸으며 지금도 두드리고 있으나 기대만큼 성과를 얻어낸 기업은 드물다.그러나 대우종합기계가 모기업의 도산이라는 어려움속에서도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것도 4년만에 이뤄냈다.대우종합기계는 이미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의 유수기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우종합기계(사장 양재신)는 일본의 히타치·고마츠, 미국의 카타필라 등 세계적인 굴삭기 업체들이 20년 넘게 다져놓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피눈물 나는 노력의 대가’였다.

기자가 대우종합기계 중국법인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가 위치한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烟臺)시를 찾은 것은 지난달 30일 오후 5시30분. 차를 타고 옌타이 공항을 빠져나와 우회전하자마자 대우중공업의 굴착기 그림이 새겨진 간판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주변은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는 황량한 벌판이 펼쳐지고 어둑해져 가고 있어 더욱 눈에 부시게 느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우중공업은 그저 우리나라의 한 업체에 불과했다. 한 20분이 지났을까. 차는 어느새 연대공장 정문앞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 이 곳의 총책임자인 채규전 상무와 인터뷰를 하면서 중국인에 대한 강한 ‘신뢰’가 느껴졌다. 연대공장이 4년만에 만리장성과 같은 선진국 업체들의 아성을 깰 수 있었던 근원적인 비결이었다. 조금전 가볍게 여겨졌던 대우의 간판은 어느새 그들이 이국 땅에서 흘린 땀과 노력의 결정체로 변해 있었다.

◇틈새 전략을 써라=지난 96년 9월 첫 삽을 뜬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는 이후 2년동안 중국시장을 뚫지 못해 동남아지역으로의 수출 거점에 그치고 있었다. 히타치 등 선두업체의 굴삭기와 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브랜드 가치가 중국 땅파기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잣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 시장은 금융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어 연대공장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채상무 등 대우맨들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심정으로 98년 6월부터 당시로선 파격적인 할부판매를 시도했다. 카타필라 등 터줏대감은 물론 국내업체들도 중국에 고가인 굴삭기를 팔고 돈을 떼일 것을 우려, 외상판매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중국인을 믿는 틈새전략을 쓴 것이다.

또 중국인들은 현금이 부족해 신제품 가격의 20∼30% 수준인 중고를 선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고 가격으로 새 제품을 살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는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98년 1∼5월 40대 판매에 그쳤던 굴삭기가 날개돋친 듯이 팔리면서 연말까지 450대가 나갔다. 지난해에는 연간 1000대를 돌파하면서 전체시장의 23%를 점유, 일본 고마츠를 제치고 히타치(25%)에 이어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대우의 추락에 따른 이미지 상실을 경쟁사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한 가운데 이룩해낸 성과여서 연말결산을 하던 전직원들은 서로를 껴앉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올해는 대우중공업 열풍이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4월 한달동안에만 180대를 파는 등 10월말까지 1150대를 판매, 당당히 1위로 올라섰다. 연말까지 1400대 판매는 무난할 것으로 보여 처음으로 수위 자리를 넘보게 됐다.

◇중국인과 함께 하라=대우중공업이 광활한 중국시장에서 단지 틈새전략으로 시장 장악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연대공장 설립으로 고용창출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다른 점은 늘 옌타이 시민과 함께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었다. 연대 공장은 직원 모두 자발적으로 극빈자녀에게 장학금과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희망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또한 1년에 6번 실시되는 세무 감사에서 단 한번도 지적받은 적이 없어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투명경영의 회사’로 각인됐다. 연대공장의 한국인 직원들은 중국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중국인과 좀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원용 관리부장은 “중국 사업을 위해서는 중국어 구사능력이 필수적인 요소로 보고 미리 30여명의 직원을 ㅔ이징 경제무역대학에 보내 어학연수를 시켰었다”면서 “대부분 통역없이 중국어를 쓰는 한국인들에 대해 중국인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 직속기관인 연대경제기술개발구역투자촉진국의 량시궈(揚錫國) 일한처부처장은 “이제는 옌타이 시민 대부분이 전국 어느 지역에서 굴삭기 수요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대우중공업에 알려줄 정도”라고 전했다.

리인(李銀) 중국 건설장비협회 부회장은 대우중공업의 성장 요인에 대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리 밑바닥을 다져라=대우중공업이 단시일 내에 중국 굴삭기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철저한 준비가 깔려 있다. 94년 10월 산둥성 정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비준받고 가장 먼저 판매조직 등 영업망 구축에 나섰다. 중국 전역에 합작판매회사 3개와 영업지소 9개 등 12개 조직을 만들고 지난해까지 85개의 중국인 대리상을 꾸준히 세워나갔다.

연대공장 설립초기 영업망 최전선에서 뛰었던 이종욱 상하이지사장은 “중국 전역에 영업망을 꾸미기 위해 2년동안 비행기를 탄 횟수가 1500번이나 된다”는 말로 당시 영업망 구축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대신했다.
판매조직을 갖춘 뒤에는 사후관리(A/S)에 중점을 뒀다. 현지 중국인 대리상들의 경우 한국과 연대공장을 오가며 굴삭기에 대해 철저히 교육을 시켜 굴삭기 판매는 물론 A/S, 부품판매까지 담당토록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서부대개발 사업 등 물류산업 구축에 한창 나서고 있는 중국 대륙에서 대우중공업의 굴삭기 신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 msk@fnnews.com 【옌타이(烟臺)=민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