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시장으로 돌아가자(3)]인맥·관행이 키운 부실금융 '불행한 유산' 청산이 과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07 05:19

수정 2014.11.07 12:11


한국의 금융산업은 개발독재가 낳은 사생아였다. 금융인들은 수재들이 들어가도 바보가 되어야 살아남는 집단에서 살아왔다.

은행을 정부가 세웠고 은행의 대출재원도 정부가 조달해 주었으며 어디에 얼마를 대출해 줄지도 정부가 정했다.

은행이란 이같은 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는 기계적 집단이나 다름없었다. 선진 금융기법·위험관리·대출심사기능·시장원리에 따른 자원배분과 시장의 힘에 따른 기업 퇴출 등은 배부른 딴나라 소리였다.

그 배부른 딴나라 소리가 우리의 소리가 되기 위한 작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전망은 아직 어둡다.

◇태생적 한계=한국의 금융산업은 이같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시작했다. 이런 한계를 가진 한국의 금융산업에 대해 ‘시장원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박진근 연세대 교수는 “정부 주도로 고도경제성장을 추구했던 시절의 금융관행을 시장원리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하고 “금융산업 내부의 인맥과 기법,관행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현 시점에서도 한국의 금융산업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유산을 껴안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금융이 허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재정이 담당해야할 문제들을 금융이 대신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시장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금융이 허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재정이 담당해야할 문제들을 금융이 대신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시장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불행한 유산과 그 청산 작업=시장원리에 따르지 않았던 금융산업의 유산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화였다. 그리고 금융을 포함한 우리 경제시스템 전반의 도덕적 해이다.

금융시장이 정치적으로 힘센 자들이 보다 많은 돈을 가져가는 원시적 분배법칙으로 작동될 때 금융기관·기업·정치권력 등 모든 참여주체들은 책임은 지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기업·금융조정은 이같은 반갑지 않은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 최종적인 목표는 금융시장에도 시장원리가 작동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으로 돌아가는 작업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해야한다. 시장은 금융산업을 시장으로 돌아오게 만들 힘이 없기 때문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과거 부실을 털어내는 현재의 금융구조조정은 우리 금융산업입장에서 과거의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나는 종교적 세례의식에 비견된다”고 말하고 “부실의 싹을 철저하게 자르지 않고 당장의 파장만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얼버무리면 또다른 구조조정을 회피할 수 없고 시장원칙의 확립은 그만큼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의 목표=지난 2월 금융감독원의 한 임원이 1000여개 금융기관에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편지의 핵심 내용은 이러했다.

“5년후 우리 금융기관, 특히 은행들은 몇개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아직도 많은 금융기관장들이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냉혹한 글로벌 마켓에서 치밀한 대책없이 막연한 기대속에 앞으로 수년간을 더 지낼 경우 해당 금융기관 및 임직원들은 도태될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구조조정은 두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부실을 털어내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실과 상관없는 금융의 경쟁력 그 자체를 확보하는 일이다.

금감원 임원이 보낸 서한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리스크 관리제도·내부통제제도·전산시스템·탁월한 최고경영자 등 각종 소프트웨어적 혁신을 촉구한 것이었다.

구조조정 이후 정부와 정치권력에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일이다.


◇직접금융시장의 과제=자본시장도 개혁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현준 사건에서 보는 자본시장에서의 해괴한 행태는 아직 우리 자본시장이 시장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야하는 길이 얼마나 먼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대표이사는 “투신사들이 시장 신뢰를 잃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자금이 단기화되고 투신사들은 장기투자 혹은 내재가치 투자하는 본연의 기능을 못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용재 한국투자신탁증권 컴플라이언스 부장은 “현재 정부는 비과세상품 등 상품 위주 시장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장기자금을 유인할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며 “공시를 강화하고 부당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등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시장친화적 정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봉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연·기금의 40% 이상이 주식에 장기투자되고 있는 미국과 한국증시는 질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기업들은 소액주주중심 경영을 해야 투자자들을 기업가치에 대한 장기투자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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