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사장으로 돌아가자(4)]정치인 도덕적 해이 시장신뢰까지 잃는다


“이놈의 정치는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으니.”

정치권은 위기의 통제탑이 아니라 위기의 진원지인가. 경제위기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국민들에게 정설처럼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진지 오래다. 정치의 수요자인 국민들은 정치의 공급자인 정치인들을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다.

각종 구조조정 법안과 공적자금 문제 등 산적한 경제현안이 국회통과를 기다리며 총각을 다툴 때 우리 정치권은 정치현안에 발목을 잡혀 극한 대치를 계속해왔다. 공교롭게도 이와 때를 같이해 경제위기의 조짐이 찾아들었고 기업과 금융개혁이 늦어져 지불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과 국민의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정치권의 위기불감증이 경제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 사례중 하나다.

김대중 대통령이 ‘원칙대로 처리’ 방침을 천명했지만 최근의 현대사태 처리과정에서도 “남북경협과 관련, 중요한 역할을 해온 현대를 벼랑끝으로 몰면 안된다”는 정치논리가 한때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현대측에서 정부와 은근히 협상을 시도하려 했던 사실은 정치논리로 경제문제를 푸는 ‘반(反) 시장구조의 위험성이 우리 정치 현실에 뿌리깊게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먼저 정치의 순기능이 복원돼야 한다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경제의 취약성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 신뢰의 상실과 정경유착에 기인하는 바가 상당하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김만흠 박사는 “외환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고 총체적 신뢰성 위기였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한다”며 “시장메커니즘의 핵심인 신뢰성에 대한 위기를 치유하지 않고 경제적인 생산력 문제로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반추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복원의 핵심은 부패구조의 청산과 여야관계의 개혁이다. 부패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된 고리사슬의 복합현상으로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현상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정치인들에 대해 높은 도덕적 규범과 기준이 요구된다. 음습한 습지에서 자라는 부패를 통제하는데는 투명성과 개방성이라는 햇볕 만큼 좋은 약은 없다. 파워엘리트들의 부정부패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준 사례는 여러차례가 경험한 바 있다.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동방금고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정치와 경제의 잘못된 만남은 지식정보 시대를 선도하겠다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아젠다’를 흔들어 놓은 또 하나의 사례다. 지도층에 한차원 높은 윤리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이들이 바로서야 국민경제가 바로 설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실종은 여야관계의 실종에서 비롯된다. 단국대 황주홍 교수는 “정치라는 자유시장에서 여당이라는 상품과 야당이라는 상품을 선택한 국민들의 정치소비 심리를 두려워해야 한다”며 “여야관계가 상극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 정치지도자의 도덕적 해이는 경제불안을 야기하고 시장의 신뢰를 잃는 원인을 제공하고 된다”고 지적했다.

여당은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 의식을 갖고 대야관계의 회생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대통령의 재임 후반부는 레임덕 현상으로 개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위기극복에 매진해야 한다. 야당도 국가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경제개혁 노력에 초당적인 협조를 해야 한다. 헌법에도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야당의 정국대처 방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거대야당의 국정동반책임론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야의 정치불안정성은 국정혼선을 통제하는 정치권의 국정위기관리 능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정치의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위기관리 능력이 급격한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치시장’의 힘이 정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부패와 파행, 개혁피로 증후군 같은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요인으로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근본적인 정책처방의 타이밍을 놓치면 경제개혁은 후퇴하고 불안을 급격히 증가한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시장중심의 정치를 구현하려면 국민지향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정치생산자는 알고 있으나 정치소비자는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성 또한 제거해야 한다. 위기의 근원이 정치에 있다는 점을 국민들은 잘안다.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호락호락한 정치소비자가 아니다.

/ seokjang@fnnews.com 조석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