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 꽁트] 무기를 늘려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15 05:21

수정 2014.11.07 12:05


가장 많은 장비가 요구되는 운동은 무엇일까.

나는 한때 낚시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2칸 낚싯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찌와 추, 미끼를 산 정도가 고작이었다. 낚시에 흥미를 갖다보니 원정도 다니게 되었다. 자연히 밤낚시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구입했다. 텐트는 물론 아이스박스를 포함한 취사도구 일체를 갖추었다.


낚시를 버리고 골프를 시작하면서 내 차는 겨우 짐차라는 꼬리표를 뗐다. 차안에서 깻묵 찌꺼기나 지렁이나 구더기도 나오지 않았고 생선 비린내도 사라졌다.

골프를 처음 시작해서는 14개나 되는 채의 용도를 몰랐다. 3번과 5번 우드, 피칭웨지, 샌드웨지, 7번과 5번아이언, 퍼터만 들고 다녔다. 볼 쫓아다니기에 바빠서 양산을 펼 틈도 그린을 수리할 짬도 없었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신발도 세 켤레나 있다. 연습장용 낡은 신발과 쇠징 스파이크, 그리고 고무징 스파이크가 있다.

골프 실력이 향상되어가면서 내 골프가방도 무거워졌다. 7개의 채만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다. 100타를 깨면서 드라이버와 4, 6, 8번의 짝수 아이언이 합세했고, 90타를 깨면서 헤븐이라 불리는 7번 우드와 9번 아이언, 그리고 로브샷용의 로프트 각도가 큰 아이언으로 식구를 늘렸다.

구력과 함께 늘어난 것이 장비가 아닌가 싶다. 비라도 쫄딱 맞고 들어와서 장비를 말리려고 가방을 풀어놓으면 온 집안에 발 디딜 곳이 없다.

바람막이 옷, 장갑과 수건, 티와 마커는 기본 장비이지만, 일회용 반창고, 지사제와 정로환 등의 구급약, 루즈와 콤팩트, 자외선 차단제 등의 화장품, 먹다남은 초콜릿과 사탕 등 군것질거리, 손목의 부상을 방지한다는 마징거제트 팔, 손난로….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내가 가장 아끼는 골프장비가 하나 있다. 설악산의 단풍소식과 함께 챙기는 물건이다. 나는 주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술병을 가지고 있다. 낚시를 다닐 때도 내 곁에서 나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물건이다. 여기에 위스키나 보드카를 담아 백에 넣는다.

위스키의 원조는 스코틀랜드다. 골프의 발상지도 스코틀랜드다. 바람이 냉혹하게 차고 기온이 낮은 스코틀랜드에서는 겨울철이면 위스키를 마시면서 골프를 한다고 한다. 연인과, 한 홀을 마칠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면서 18홀을 돌면 위스키병도 바닥을 드러내고, 사랑을 나누기에도 최적인 컨디션이 된다고 한다.


나는 아직 연인과 위스키를 마시면서 라운드를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항상 꿈은 꾼다.
언젠가 꽁꽁 언 몸을 위스키로, 연인의 따뜻한 가슴으로 녹이며 함께 라운드할 날을 꿈꾸어 본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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