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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경제교실-국가채무 누가 갚나]국채상환 국민 몫…재정적자 줄여야


공적자금 투입 확대 등 재정지출 증가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국가부채 상환에 관한 논란이다.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채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면 지불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데다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말에 65조6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14.5% 수준이었으나 2000년 6월에는 GDP의 23%에 달하는 113조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와 같이 국가부채가 증가한 것은 정부가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조세 인상이 아닌 국채발행을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국가부채는 경제 주체인 개인에게 어떤 의미이며 또 상환부담은 누가 지게 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 번째로 국채는 미래에 세금납부를 통해 청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 세대가 후세대에 남기는 빚이라는 주장이 있고 이에 대해 국가부채도 유산 등에 의해 중성화될 수 있으므로 미래 세대에게 주는 부담이 아니라는 반론이 존재한다.

◇현세대 이익은 후세대의 조세부담=먼저 국채발행이 후세대에게 남기는 빚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현재의 기성세대와 미성년세대 모두가 필요로 하는 정부지출을 위해 10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 같아 정부가 10조원 규모의 3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한다고 가정하자. 30년 정도면 노동시장에서 한 차례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현 시점에서 발행하는 국채는 재산과 소득이 있는 기성세대가 인수하게 된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른 재산을 처분해(유동화·현금화) 국채를 매입하기 때문에 이들의 보유자산총액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부가 이렇게 국채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모두 추가적인 정부지출로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기성세대와 미성년세대의 소득은 각각 5조원 정도씩 늘어난다. 즉, 기성세대는 정부의 재정적자로 5조원 정도의 구매력이 더 생기는 것이다.

물론 미성년 세대도 지금 당장은 5조원의 추가소득을 얻지만 미래 상황까지 고려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정부는 현재의 미성년 세대가 성년이 되어 노동시장에서 활동하는 30년 후에 국채 상환을 위해 10조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늘어난 소득 5조원을 감안하더라도 미래의 조세부담액으로 10조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하므로 미성년 세대는 장기적으로 5조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즉, 기성세대가 누린 5조원의 이득이 고스란히 미성년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산을 통해 국가부채 중성화 가능=이에 대해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로버트 배로 교수는 국채발행이 후대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반론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자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세대의 생활수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자손들에게 유산을 상속해 주는 것도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사람들이 재산을 모두 지출하지 않고 상당한 부분을 유산으로 남기고 죽는 것이 후손들의 소비생활을 미리 감안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현재의 재정적자가 다음 세대의 조세부담을 높여 후손들의 생활수준에 어려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채무에 따른 조세부담을 상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유산을 남겨주게 된다. 즉, 후손들이 미래에 상환해야 할 추가적인 조세부담만큼 유산을 더 늘리기 때문에 국채발행의 소득감소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배로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국채발행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현세대의 소득 증가분이 유산의 형태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기 때문에 후손들의 순수한 조세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

이 이론은 나름대로 학문적인 의미가 큰 학설이다. 자녀가 있는 독자라면 유산을 통해 후대에게 일정한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려 한다는 학설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유산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일반 납세자들이 정부부채 규모가 얼마인지 또 후대에 전가되는 금액이 얼마인지를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후대의 생활수준을 염려한다면 유산을 늘릴 생각을 하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참여를 통해 현재의 재정적자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