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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3년 한국경제-위기 또 오는가]˝환란은 없다…본질은 금융불안˝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2 05:23

수정 2014.11.07 12:00


21일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만 3년이 지났다.그러나 동남아 통화가치 폭락에 이은 원화 환율의 급상승,주가하락 등 지난 97년 외환위기 공식 선언 전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정부가 “외환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모습도 비슷하다.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닮은 꼴의 상황전개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은 자칫 경제를 진짜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아울러 확실한 구조조정만이 위기 재발의 우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위기 재발할까=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는 게 정부나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21일 오후 기자 간담회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말로 가능성을 일축했다.재경부 내에서는 “겉보기에 97년과 상황이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과 체력보강이 많이 이뤄진 만큼 과거와 같은 위기 재발 가능성은 없다”는 자신있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물론 경계는 하고 있다.

과거 위기가 외환유동성(자금) 부족이 1차적 원인이었다면 그런 점에서 충분한 대비가 갖춰져 있다.자신감의 근거중 하나다.외환보유액은 15일 현재 933억8000만달러다.단기 투기자본의 공격의 충격에 대응할 만큼 충분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때문에 진 장관은 “현재 외환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연말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약 110억달러대에 달해 충격대비용 보유고는 더 쌓을 여지가 충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지난 2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OECD 국가중 2위이고 단기외채의 2배 수준임을 감안할 때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발표해 정부의 판단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 징후를 진단하는 지표중의 하나인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낮다는 점에 주목한다.지난 97년 말 단기외채는 636억달러로 외환보유액의 714.6%나 됐다.부실기업 도산으로 ‘주식회사’ 한국의 국제적 신용도가 급락하자 채권금융기관(국가)들은 단기채권의 회수에 나서 한국의 목을 죈 결과 위기발생의 도화선이 됐다.9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단기외채는 468억달러로 외환보유액의 50.6%에 불과하다.이 비율이 60%미만이면 안정수준이다.총외채(1405억달러)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33.3%에 불과하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총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 등 위기지표를 검토해보면 2차 환란이 올 것이라고 판단할 만한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한국개발연구원(KDI)의 홍기석 박사도 “97년 이후 외환보유액 확충이 이뤄져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진단하고 “현재 전개되는 위기의 본질은 외환 위기가 아닌 내부적인 금융위기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기처방은 적절했나=한국의 외환위기는 외환유동성 부족이 1차적 원인이었다.보다 근원적으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이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었다.한보,삼미,기아 등 부실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은행의 부실이 쌓여 결국 국가 전체가 부도가 난 것이 위기의 실체다.노조의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저항도 일조를 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구제금융 신청이후 정부와 IMF는 정례협의를 통해 한국병의 원인제거에 주력해왔다.한국에서 달아나는 투자자금을 묶어두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펴는 한편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털기를 실시했다.금융부문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의 건건성 감독이 크게 강화됐고 기업부문에서는 재무구조개선,경영의 투명성 책임성 제고가 이뤄졌다.지난 97년에는 환투기에 그대로 노출됐으나 가변예치의무제(VDR),외환집중제,자본거래허가제 등 조기경보체제를 갖춰 투기적 자본의 공격에 대한 대응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러한 구조개혁의 성과위에 물가는 안정되고 성장은 꾸준해 지표상으로 한국은 IMF 관리체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거나 오히려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성장률은 지난 98년 마이너스 6.7%에서 지난해 10.7%로 회복한 데 이어 올해는 9%안팎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지난 97년 말 82억달러의 적자였던 경상수지는 올해 110억달러로 예상돼 3년 연속 흑자행진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소비자 물가도 지난해 0.8%,올해 2.1% 상승에 그치고 있다.

IMF는최근 한국 정부와의 연례 정책협의를 통해 “지난 3년간의 한국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한국 정부의 대담한 정책들이 한국 경제의 지평을 탈바꿈시켰다”고 밝혔다.구조개혁의 틀이 제자리에 잡혔음도 인정했다.극제금융센터의 전광우 소장은 “그러나 위기의 근인인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치유는 지난 3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진하다”면서“향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을 이룩하려면 이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꼽십었다.

◇특효약은 구조개혁=홍기석 박사는 “앞으로 전개되는 위기는 국내의 부채문제이며 국내 금융위기”라고 전망했다.홍박사는 그러나 “구조개혁의 속도가 느린 게 문제”라면서 “98년 말부터 경기가 좋아져 금리를 내리고 기업과 금융부문의 부실을 처리하지 않은 부담이 현재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의 처리만이 우리 경제가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도 “현재 우리경제는 V자형 회복국면에서 W형으로 꺾여 만성적인 불황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구조개혁을 통해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그는 이어 “지난 해 8월부터 1년간은 구조개혁을 태만히 한 기간”이라고 지적하고 “9월 이후 정부의 구조개혁에 대한 의지가 나타나고 있어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가 재벌의 계열분리를 요구해오다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계열간 지원을 중재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투자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미지수다”면서“원칙에서 벗어나는 정부는 신뢰를 상실하는 만큼 극히 신중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전광우 소장은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만성적 질환의 근원인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이 작업이 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과열과 파열’의 연속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여러가지 거시지표를 감안할 때 우리가 위기재발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그러나 정쟁으로 각종 개혁입법이 통과가 발목이 잡히고 있는 만큼 정치 선진화를 통해 개혁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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